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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골목 맛 제대로 보기
①서울 광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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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골목 맛 제대로 보기 ①서울 광장시장




시장골목 맛 제대로 보기 ①서울 광장시장



“삶이 우울하면 시장 골목에 들어서라.”


빡빡머리 고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금씩 이해가 가더니, 반백이 넘은 이제는 내 입에도 종종 오르는 말이 됐다.


시장 골목은 살아있다. 재래시장 골목이 더 그렇다. 들쭉날쭉, 삐뚤빼뚤, 꾸불꾸불…,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기대감’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어서 그런가보다. 반듯하게 정돈된 할인점 식품매장이나 현대식시장의 밋밋함과는 비교할 수 없다. 빨간 고무 다라이 속에서 물을 튀기며 펄떡거리는 생선은 생동감을 더해주고, 좌판에 수북수북 쌓인 산나물 뿌리에서 풍겨나는 흙냄새는 어린 시절 마냥 즐겁던 고향의 추억을 일깨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활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시장 상인들이 있어서 그렇다. 그들은 ‘시장 밖 사람’들의 처진 어깨를 곧추세워주는 피로회복제다. 부정할 수 없는 옳은 얘기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는 인문학적, 형이상학적인 시장예찬에 불과하다. 폼 잡는 얘기란 말이다. 원초적 본능, 형이하학적 감성을 더해야 한 단계 더 호소력 있는 시장예찬이 된다. 바로 시장음식이다. 시장엔 골목골목 값싸고 푸짐한 음식이 널려 있다. 맛은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로 하나하나 일맥상통이다. 만원 지폐 1장만 있으면 빵빵하게 배를 채우고 온 세상을 갖은 듯한 포만감에 빠질 수 있다. 격하게 표현한다면, 시장 골목의 음식이 시장을 살아있게 만들고, 시장 밖 사람들이 ‘우울할 사이’조차 없게 만드는 핵심요소로 요약된다.


에디터 박은경 글, 사진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박은경





서울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

시장 골목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동네시장도 좋지만,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광장시장이 최고다. 광장시장은 서울 종로 4가와 5가 사이에 있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섬유원단이나 한복이 주 종목인 시장이었다. 청계천 복원 이후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광장시장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먹거리시장이 됐다.


시장엔 보통 장을 보러 나온 아주머니들로 북적이지만, 광장시장엔 의외로 남자 손님들이 많다. 평일 저녁엔 퇴근길 넥타이부대 직장인이고, 주말엔 하산길 알록달록 등산객이다. 외국 관광객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명동이나 동대문과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들리는 외국어는 중국어다. 그래도 여전히 다양한 피부색의 관광객들이 모여 시장 맛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셀카의 셔터를 눌러댄다. 시장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녹두빈대떡을 필두로 광장시장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맛있는 먹거리를 소개한다.




골목골목 숨어있는 맛있는 먹거리



녹두빈대떡



광장시장의 명물 중 명물. 시장에 들어서면 코끝에 와 닿는 고소한 냄새의 진원지다. 먹자골목 중심부에 몰려있는 좌판엔 늘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빈대떡 소리도 덩달아 요란하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다가 빈자리가 나면 쏜살같이 엉덩이를 날려야 한다. 한쪽에선 맷돌로 녹두를 연신 갈아 넘기고, 다른 쪽에선 여기에 숙주나물 등을 넣고 반죽을 한다. 기름 넉넉하게 부은 널찍한 번철에선 쉴 새 없이 빈대떡이 부쳐져 나온다. 그래도 쌓일 틈 없이 팔려 나간다. 두툼한데도 겉은 바삭바삭, 속은 야들야들하다. 배구선수 손바닥 사이즈라 둘이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한장에 4000원.




마약김밥



녹두빈대떡과 함께 광장시장 2대 명물로 꼽힌다. 광장시장 먹거리 투어에서 빠뜨리면 평생 후회할 맛이다. 하얀 쌀밥에 채를 썰어 볶은 당근과 단무지를 넣고 김으로 단단하게 감싼 다음, 참기름을 바르고 깨를 훅 뿌린 게 전부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꼬마 김밥이 묘하게도 먹고 돌아서면 생각나고 또 생각난다. 김밥 마는 아주머니 앞에 앉아 하나둘 받아 먹다 보면 앉은 자리에서 8개(1인분, 2000원)가 게 눈 감추듯 없어진다. 왜 ‘마약김밥’인지 알 만한 대목이다. 김밥을 찍어 먹는 톡 쏘는 맛의 노란색 소스가 있는데 겨자, 간장, 식초 등으로 맛을 낸다고 한다.



비빔밥


콩나물부터 시작이다. 고사리나물·돌나물·참나물·부추·무생채·상추·치커리·오이·열무김치·배추김치·풋고추·멸치까지. 뷔페 스타일로 온갖 비빔재료가 밥상 앞에 쫙 펼쳐진다. 양푼에 보리밥과 쌀밥을 한 주걱씩 담아주면서 양껏 골라 담아 비벼 먹으란다. 엄두가 안 나 순서대로 조금씩 담는다. 금방 양푼 가득 푸성귀가 넘쳐난다. 강된장과 고추장을 올리고 김 가루와 참기름을 떨어뜨려 비빈다. 한 숟가락을 퍼서 입에 넣으려니 반은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슬쩍 옆 사람을 보니 그도 마찬가지. 서로 계면쩍은 눈웃음을 보낸다. 씹을 때마다 풋풋한 풀 향기가 넘쳐난다. 입맛에 따라 보리밥과 쌀밥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무한리필 1인분에 5000원.




손만두국


남대문시장에 손칼국수가 있다면 광장시장엔 손만두국이 있다. 남1문으로 들어서면 시장 복판에 앉아 만두를 빚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만두피에 소를 올려 손으로 꾹 누르면 바로 완성이다. 1분에 30개는 족히 빚는 것 같다. 만두는 집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 김치만두. 소에는 돼지고기·두부·숙주·김치·양파·부추가 들어갔다. 메밀가루를 넣은 누런색의 만두도 있다. 멸치 장국에 끓여내 기름지지 않고 담담하다. 옆자리에서 칼국수를 주문한 할머니가 “만두 맛 좀 보자”고 하니 찐만두 두 개를 접시에 담아낸다. 말만 잘하면 공짜 대접도 받을 만한 인심이다. 손만두국·찐만두가 각각 5000원.




육회


값비싼 한정식집이나 고깃집에서 어울릴 법한 메뉴가 광장시장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종로4가 우정약국과 우리약국 사이로 난 좁은 길에 육회집이 줄이어 있다. 주말이면 몇몇 집은 온종일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다. 이곳의 육회는 고추장에 무쳐 내지 않고 달콤 짭짤하게 양념해낸다. 채 썬 배와 계란 노른자와 함께 비벼 먹으면 된다. 취향에 따라 기름장을 곁들이기도 한다. 한 접시에 1만2000원. 해가 떨어질 때가 되면 차진 육회에 소주 한잔 하려는 주당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팔뚝순대


“우와! 내 팔뚝만 하네.” 광장시장 순대를 보면 절로 나오는 말이다. 다른 곳의 순대랑 비교가 안 된다. 돼지 내장에 속을 꾹꾹 눌러 담아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굵기도 일정하지 않다. 속은 당면이 아닌 찹쌀. 톡 쏘는 매콤한 맛이 식욕을 건드린다. 후춧가루를 제법 쓴 모양이다. 한 점만으로도 입안이 가득 찬다. 촘촘하게 들어찬 찹쌀 속이 입에 착착 감긴다. 5000원이면 순대와 함께 간도 넉넉하게 썰어 담아 준다. 소주 한잔 더해지면 황홀경에 빠진다. 낮술이 부담스러우면 동치미 국물이라도 곁들여 옹골진 맛을 즐겨 보자.




대구탕


대구는 입이 커서 붙은 이름이다. 머리가 커서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 탕을 끓일 때 넣으면 뽀얗고 구수한 국물 맛을 낼 수 있다. 다 끓은 뒤에는 뼈에 붙은 살점을 쪽쪽 빠는 재미가 있다. 광장시장의 대구탕은 냄비에 콩나물을 깔고, 두부와 대구, 내장 등을 넣고 주문 즉시 보글보글 끓이는 대구탕으로 유명하다. 민물새우와 미나리도 듬뿍 넣어 달고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맛을 낸 것이 특징이다. 시장 골목 좌판에 미리 준비해 쌓아놓은 대구탕 냄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날 마신 술기운이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2인분에 2만원.





기타


고추전·애호박전·가지전·감자전·생선전·부추전·김치전 등 다양한 재료의 전을 한 접시에 담아 파는 모둠전도 있다. 노점에선 5000원인데 건물 안 가게에선 1만원을 받는다. 노릇노릇 익은 수수부꾸미는 검은팥이 든 수수부꾸미와 흰팥이 들어간 찹쌀 부꾸미 두 종류가 있다. 값은 한 개에 1000원. 새알심이 동동 떠 있는 단팥죽과 노란 호박죽 등 여러가지 죽도 있다. 한 그릇에 5000원. 삶은 문어 등과 함께 나오는 생선회는 1만원. 두 사람이 소주 각 1병을 해치울 만큼 푸짐하다.


이밖에도 빨간색 떡볶이, 어묵 등 광장시장엔 ‘먹을 것이라면 있을 건 다 있는’ 먹거리 천국이다. 여기서 광장시장 먹거리 제대로 즐기기 팁 하나. 광장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정할 것. 맛있는 메뉴가 많아 선택의 고민으로 괴로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싼값에 이것저것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가는 배가 불러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불룩한 배를 끌어 앉고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금세 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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