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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제주
돌담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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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제주


돌담길 산책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제주에는 수선화가 지천이다. 수선화 향을 한껏 맡기 위해 몸을 낮추고 무릎을 꿇었다. 킁킁 데는 순간, 희고 노란 꽃 뒤로 켜켜이 쌓인 돌담과 눈이 맞았다. 무생물인 돌덩이가 숨 붙은 생명처럼 느껴졌다. 돌들은 표면에 숭숭 뚫린


검은 입을 벌려 말을 거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돌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멈춘 것 같았다. 찰나의 마주침은 첫눈에 반한 이성을 만난 것처럼 압도적이었다. 돌의 이야기, 그 너머 돌무더기 위에서 척박한 삶을 지혜롭게 일궈낸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길을 나섰다.


글, 사진 문유선(여행작가)






돌을 쌓아라, 살기 위해


제주 땅은 척박하다. 벼농사는 꿈도 못 꾸고 밭농사라도 지을라치면 무거운 돌덩이를 골라내고 땅을 일궈야 했다. 골라낸 잡석이 쌓여 돌담이 됐고, 쌓다 남은 돌들은 밭 가운데 돌무더기로 방치됐다. 이를 ‘머들’이라 한다. 그 때문에 척박한 중에도 그나마 비옥한 땅을 가늠하는 방법은 밭 담의 높이를 보는 것과 머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는 것이다. 밭담이 낮으면 그나마 먹고살 만한 동네, 높으면 먹고사는 게 녹록지 않은 동네다. 고려시대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지는 애월읍의 하가리로 향했다. 이 마을의 별칭은 잣동네다. ‘잣’은 ‘성’을 가르치는 옛말이자 기다랗게 돌을 쌓아 올린 담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작은 돌들이 성처럼 쌓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 제주 내에서도 돌 많기가 유별나 잣동네라 부른 것인지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건 충분히 이해할 만큼 돌이 많고 담도 많다.







돌담의 높이가 삶의 고단함과 비례하니, 하가리의 옛 시절은 징글징글하게 힘들었을 게다. 하지만 시절이 변하고 온전히 보존된 돌담이 귀해지면서 이곳은 밭담, 집담이 외담(한 줄로 쌓은 담), 겹담(겹줄로 쌓은 담), 잡굽담(아래쪽에 작은 돌을 깔고, 작은 돌이 구르지 않도록 큰 돌로 누른 담) 등의 다양한 형태로 넘실넘실 굽이치는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다. 하가리의 돌담이 유연하게 굽어 도는 이유에서도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돌담이 거센 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바람길을 내기 위함이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연자매 방아와 초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된 문시행 가옥을 연달아 볼 수 있다. 두 곳 모두 제주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제주의 전통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불모의 땅 위에 형성된 생명의 숲, 곶자왈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 한계 식물과 남방 한계 식물이 함께 자라는 신비의 숲이다. 화산이 폭발하던 때, 잔돌들이 튀어 알알이 박힌 땅은 돌을 골라내고 농사라도 지었지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돌로 쪼개져 굳어 버린 땅은 버려진 땅, 곶자왈이 되었다. 곶자왈 인근에도 사람들은 살았다. 그들은 질긴 생명력으로 돌 틈을 비집고 자란 나무를 잘라 숯을 만들어 판 돈으로 연명했다. 제주의 주요 가마터가 곶자왈 인근에 분포하는 이유다. 나무를 베고 가시덤불이 자라면 땅은 버려졌다. 세월이 흘러 잘려나간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 자라면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나무를 벴다. 그런 이유로 곶자왈 숲의 나무들은 나이테를 가늠할 수 없다. 우리가 보기엔 나무 기둥 같아도 알고 보면 대개는 새순이다. 어쩐지 나무들이 유독 가늘고 여리다 싶었다.







곶자왈을 지탱하는 돌, 돌을 드나드는 바람과 물, 그리고 그 위에서 일어나는 숲의 모든 비밀이 궁금하다면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곶자왈 환상숲으로 가보자. 이곳은 숲지기 이형철 씨가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제주 곶자왈의 60%는 사유지, 20%는 목장, 20%는 도지에 속해있다). 정시마다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21년간 곶자왈에서 살아온 숲지기의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돌로 빚은 세계


제주 현무암은 구멍이 숭숭 나고, 제멋대로 생겨서 처음 봤을 때는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면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돌문화공원과 금능석물원에 가면, 위의 착각이 현실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조천에 위치한 돌문화공원은 화산에서 분출한 다양한 형태의 화산석을 비롯해 전통 석상까지 제주 돌 문화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30만 평 규모의 대지를 3개의 코스로 나눴다. 1코스는 제주도의 형성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돌 박물관과 돌 민속품을 전시한 야외전시장, 2코스는 고인돌과 맷돌, 주춧돌 등의 시대별 다양한 형태의 돌문화를 비롯해 석상과 동자석 등을 관람할 수 있는 탐방코스, 3코스는 제주 전통가옥을 재현해 옛 마을의 생활상과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코스로 구성했다. 3개의 코스 주변으로는 곶자왈과 오름이 감싸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압도적으로 광활한 규모임에도 아늑하고 편안한 기운이 가득하다. 거대한 석상 사이를 걷는 기분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날씨와 관계없이 언제든 좋고, 한번 발을 들이면 온종일 머물고 싶은 충동이 거세게 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한림에 있는 금능석물원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꼭 들러 보도록 하자. 이곳은 명장 장공익 옹이 평생에 걸쳐 만든 작품이 전시된 조각 공원이다. 그는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돌하르방을 조각했다. 젊은 한때, 돌챙이라고 홀대받던 시절에도 망치와 끌을 잡고 돌을 만지는 기쁨으로 살았다. 마침내 1993년 명장이 되었고, 그가 만든 돌하르방은 세계 각국 정상들의 방한 선물로 보내졌다. 장공익 옹을 만났다. 짧은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는 여러 번 활짝 웃었다. 돌하르방이 활짝 웃는다면 그의 얼굴 모양새일 것 같다.







유쾌한 얼굴, 크고 잘 생긴 귀가 똑 닮았다. 그는 오래 일한 탓에 자신만의 것이 생겨 하르방 만들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가장 편안하다고 했다. 눈만 뜨면 돌 만질 생각에 설레고, 하르방 얼굴에 윤곽이 드러나면 마냥 기쁜데 요즘은 체력이 떨어져 두어 시간만 일해도 지쳐서 슬프다고도 했다. 그리고 뱃속의 이야기들이 다 나와서 이제 나올 건 노래밖에 없다는 농담으로 말을 마쳤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석물원을 혼자 돌았다. 코스 대부분에 제주의 전통 생활상이 유쾌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돌탑을 쌓아 올려 저승 가는 길을 형상화한 미로 길, 제주 4·3에 사라진 석공의 고향을 고스란히 재현한 한산아왓동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조각해 방사탑을 쌓은 천태 망상이라는 작품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숙연해질 정도다. 석공의 작품들이 전시된 별 감흥


없는 공원일 거라는 짐작과는 정반대로, 그곳은 3000여 점의 석물에 석공의 삶이 오롯이 깃든 예술의 장이었다. 그가 제주의 돌처럼 단단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새 숨을 불어넣는 카페 앤트러사이트







서울 상수동에서 가장 멋진 카페 앤트러사이트가 제주 한림에 분점을 연다. 상수동의 신발공장을 개조해 카페를 만든 것처럼, 이번엔 전분공장을 개조했다. 게다가 이곳은 한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돌창고다.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더 아름다운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전분공장에서 사용하던 기계는 고스란히 두었고, 바닥은 제주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돌을 메워 단을 높였다. 창문 넘어 돌담이, 그 너머엔 바다가 아련히 보인다.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본 중 가장 멋진 공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자란 식물들이 실내 곳곳에 무성한 것도 매력적이다.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에 새 숨을 불어넣는 방법, 앤트러사이트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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