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항아리에 담긴 40년 손맛
북촌 ‘삼청동수제비’

59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밴드
  • URL 복사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맛, 어느덧 40년 세월이 된 노포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물기 가득 머금은 하늘과 축축한 바람이 옷깃을 적시는 철이다. 이럴 때면 사람 마음도 눅눅해지기 십상인데, 이때 문득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수제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은 속을 따뜻하게 감싸고, 야들야들하면서 쫀득한 식감의 수제비는 젓가락도 필요없이 수저로 훌훌 떠먹기 좋다. 오늘 소개하는 식당은 어느덧 40년 세월을 ‘수제비’로 이어오고 있는 노포. 1982년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골목을 지켜오고 있는 ‘삼청동 수제비’다.

 

삼청동수제비의 실내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옛 식당 분위기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홀에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빼곡하고, 벽에는 세월의 때가 묻은 메뉴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실내는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으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허름하지만 정돈된 노포의 매력이 느껴진다.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간에 앉아 있으면, 마치 몇십 년 전 추억 속으로 잠시 여행을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수제비, 투박해서 더 맛있는 음식

 

삼청동수제비의 대표 메뉴인 수제비는 큰 항아리에 담겨 나오는 특별함으로 유명하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깔끔한 육수에 바지락과 애호박, 당근 등의 재료를 넣고,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얇게 떼어 팔팔 끓여낸다. 수제비는 너무 두텁게 떼면 밀가루 맛이 과하게 느껴지고, 너무 얇으면 흐물거려 식감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두께로 떼어내는게 맛을 판가름하는 포인트인데, 이집은 딱 적당한 두께다. ‘수제비’하면 생각나는 그 야들야들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을 만드는 완벽한 두께. ‘기껏 수제비 뭐 때문에 줄을 선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일 손님들이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전쟁터 같은 주방 상황에서도 한결 같은 맛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집의 강점이 드러난다.

 

또 육수는 잡맛 없이 시원한 근본 멸치육수로, 멸치와 대파, 다시마, 무 등을 넣고 5시간 우려 만든다. 간을 세게 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이 육수와 쫀득한 수제비가 만드는 조화에 한 번 숟가락을 들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테이블에 비치된 고추지를 조금 넣는 것도 추천. 수제비는 투박한 항아리에 담겨 나오기에 먹는 내내 온기가 오래 가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국물이 식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덕분에 이 집 수제비에는 ‘항아리수제비’란 별명이 붙었는데, 마지막 한 숟갈까지도 뜨끈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배려인 셈이다.

 

 

따끈한 수제비 짝꿍은 역시 시원한 맛의 김치. 테이블마다 배추김치와 열무김치가 비치되어 있어 셀프로 덜어먹을 수 있다. 배추김치는 중간 정도로 숙성되어 적당한 산미가 느껴지는 맛이고, 열무김치는 풋내 없이 깔끔하게 익은 상태로 제공된다. 과하게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수제비와 함께 먹으면 맛이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곁들이는 별미들도 예사롭지 않네

 

 

삼청동수제비에서는 수제비와 함께 내어먹기 좋은 전 요리들도 인기다. 특히 감자전이 손꼽히는데,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 다른 것 넣지 않고 감자의 자체의 점성과 수분으로만 반죽을 잡는다. 이런 반죽의 경우 끈기가 부족해서 모양을 잡아 부쳐내는 게 어려운데, 역시나 주방의 기술이 예사롭지 않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 쫀득한 옛날 감자전 맛을 훌륭하게 고수하고 있다. 투박한 생김새지만 감자의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일품. 비 오는 날 감자전에 수제비, 동동주를 곁들이는 손님이 많은 것이 이해가 가는 맛이다. 또한 ‘파전’은 파와 반죽 위를 계란물이 얼기설기 덮은 형태로 마치 동래파전 같은 모양새다. 부드럽고 촉촉한 편이라 남녀노소 즐기기 좋다.

 

이 집에서 놓쳐선 안 될 또다른 별미는 바로 ‘쭈꾸미볶음’. 쫄깃한 주꾸미 살을 매콤달콤한 양념에 센 불로 빠르게 볶아낸 요리로, 입맛을 확 돋우는 강렬한 맛을 낸다. 불향이 솔솔 풍기는 맛있는 쭈꾸미볶음은 수제비에 곁들여도 좋고, 밥을 청해 남은 양념을 비벼먹어도 좋다. 2~3인분 정도의 푸짐한 양으로 나오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방문했을 때 사이드로 제격이다.

 

삼청동수제비의 상차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단연 동동주다. 메뉴판에는 소박하게 ‘동동주 반되’라 적혀있는 것을 주문하면 항아리에 담긴 동동주와 쪽자가 제공된다. 이곳 동동주는 걸쭉한 질감보다는 산뜻한 단맛과 은은한 쌀향이 살아 있어, 감자전이나 파전과 함께 곁들였을 때 기름기를 깔끔하게 잡아준다. 그리고 먹자마자 머리가 뎅 울릴정도로 아주 시원한 온도로 제공되니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도 좋다. 뜨끈한 수제비 국물, 바삭한 전, 그리고 담백한 동동주 한 대접까지. 삼청동 골목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이 조합은,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점심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잠시 쉬어가는 한낮의 위로가 된다.

 

 

전통을 이어가는 노포의 자부심

 

 

서울의 수많은 맛집이 세월과 유행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삼청동수제비는 꾸준함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곳이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아도 담백하고 든든한 한 그릇 수제비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그 안에 옛날부터 변치 않은 손맛의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업 이래 지켜온 ‘정직한 음식’에 대한 고집과 손님을 가족처럼 여기는 서비스 정신은, 이 집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북촌한옥마을 산책이나 경복궁 나들이 후에 들러 뜨끈한 수제비와 바삭한 전 한 접시를 마주하면, 관광객이든 주민이든 누구나 서울 토박이처럼 정겹고 푸근한 마음이 든다. 노포기행에서 소개하는 이 집의 이야기는, 결국 “옛것이라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될수록 더욱 빛나는 맛이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삼청동 골목의 역사와 함께해온 삼청동수제비는 앞으로도 한결같은 맛과 인정(人情)으로 우리 곁을 지키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서울 미식 문화의 산증인으로 남을 것이다.

 

▲ 상호: 삼청동수제비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01-1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매일 11:00-20:00 
▲ 추천메뉴와 가격: 수제비 1만원, 파전 1만7000원, 감자전 1만2000원, 쭈꾸미볶음 2만3000원, 동동주 반되 5000원 
▲ 식신 ‘안녕인스’님의 리뷰: 줄 서서 먹는 수제비 맛집. 얇은 수제비와 시원 감칠맛 나는 국물이 최고입니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날 강추하는 집. 사이드로 감자전, 파전도 맛있습니다. 동동주랑 같이 먹으면 최고!!

  • 삼청동수제비

    서울-강북-삼청동/북촌한옥마을, 칼국수/수제비/국수 > 한국음식
    출처 : 식신유저 마포면먹러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제공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제공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제공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제공
    ‘삼청동수제비’는 1982년부터 운영 중인 수제비 전문점입니다. 대표 메뉴는 작은 항아리에 담겨 제공되는 ‘수제비’입니다. 멸치를 우려 만든 육수에 바지락을 넣어 시원한 국물 맛을 자랑합니다. 얇게 떼어낸 수제비 반죽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입니다. 채 썬 호박과 당근, 부추를 넣어 다양한 식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습니다. 100% 생 감자만을 이용해 만든 ‘감자전’은 바삭하면서도 담백한 맛으로 인기라고 하니 참고 바랍니다.

    메뉴 정보

    감자전, 녹두전, 수제비, 쭈꾸미볶음, 찹쌀새알옹심이(1인분), 파전

    별 인증 히스토리

    맛집 근처 위치

댓글

0
(0/1000)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