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맛, 어느덧 40년 세월이 된 노포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물기 가득 머금은 하늘과 축축한 바람이 옷깃을 적시는 철이다. 이럴 때면 사람 마음도 눅눅해지기 십상인데, 이때 문득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수제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은 속을 따뜻하게 감싸고, 야들야들하면서 쫀득한 식감의 수제비는 젓가락도 필요없이 수저로 훌훌 떠먹기 좋다. 오늘 소개하는 식당은 어느덧 40년 세월을 ‘수제비’로 이어오고 있는 노포. 1982년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골목을 지켜오고 있는 ‘삼청동 수제비’다.
삼청동수제비의 실내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옛 식당 분위기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홀에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빼곡하고, 벽에는 세월의 때가 묻은 메뉴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실내는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으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허름하지만 정돈된 노포의 매력이 느껴진다.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간에 앉아 있으면, 마치 몇십 년 전 추억 속으로 잠시 여행을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수제비, 투박해서 더 맛있는 음식

삼청동수제비의 대표 메뉴인 수제비는 큰 항아리에 담겨 나오는 특별함으로 유명하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깔끔한 육수에 바지락과 애호박, 당근 등의 재료를 넣고,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얇게 떼어 팔팔 끓여낸다. 수제비는 너무 두텁게 떼면 밀가루 맛이 과하게 느껴지고, 너무 얇으면 흐물거려 식감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두께로 떼어내는게 맛을 판가름하는 포인트인데, 이집은 딱 적당한 두께다. ‘수제비’하면 생각나는 그 야들야들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을 만드는 완벽한 두께. ‘기껏 수제비 뭐 때문에 줄을 선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일 손님들이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전쟁터 같은 주방 상황에서도 한결 같은 맛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집의 강점이 드러난다.
또 육수는 잡맛 없이 시원한 근본 멸치육수로, 멸치와 대파, 다시마, 무 등을 넣고 5시간 우려 만든다. 간을 세게 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이 육수와 쫀득한 수제비가 만드는 조화에 한 번 숟가락을 들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테이블에 비치된 고추지를 조금 넣는 것도 추천. 수제비는 투박한 항아리에 담겨 나오기에 먹는 내내 온기가 오래 가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국물이 식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덕분에 이 집 수제비에는 ‘항아리수제비’란 별명이 붙었는데, 마지막 한 숟갈까지도 뜨끈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배려인 셈이다.

따끈한 수제비 짝꿍은 역시 시원한 맛의 김치. 테이블마다 배추김치와 열무김치가 비치되어 있어 셀프로 덜어먹을 수 있다. 배추김치는 중간 정도로 숙성되어 적당한 산미가 느껴지는 맛이고, 열무김치는 풋내 없이 깔끔하게 익은 상태로 제공된다. 과하게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수제비와 함께 먹으면 맛이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