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평양냉면의 뿌리,
을지로 ‘우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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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옮겨온 전통, ‘다시 찾아온 집’

 

을지로의 한 골목,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간직한 건물 앞, 여름철이면 이집을 찾는 손님들로 늘 장사진이 펼쳐진다. 대한민국에서 평양냉면으로 손꼽히는 식당 ‘우래옥’이다. ‘우래옥’이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1946년, 평양에서 유명 냉면집 ‘명월관’을 운영하던 장원일 씨가 해방 후 월남하여 서울 중구 주교동에 냉면 가게를 열었다. 초창기 상호는 ‘서북관’이었는데, 한국전쟁이 터지자 가게 문을 잠시 닫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전쟁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재개업하면서 그는 자신의 가게를 ‘우래옥(又來屋)’이라 이름 붙였다. 말 그대로 “다시 찾아온 집”이라는 뜻으로, 전쟁을 이겨내고 돌아온 가게라는 의미였다. 훗날 단골손님들은 이 이름을 “한번 온 손님은 잊지 않고 또 온다”는 뜻으로도 해석했으니, 재개장과 함께 전설이 시작된 셈이다. 창업자 고(故) 장원일 옹은 입버릇처럼 “냉면은 살아 있다”는 말을 되뇌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변치 않는 맛을 지키겠다는 의지였으리라. 실제로 우래옥은 최상의 재료만을 고집하며, 해방 직후 가게를 연 이래로 밀가루를 빻는 제분소와 고기를 대는 정육점을 단 한 곳으로 정해 꾸준히 거래해왔다고 한다. 북한 출신 실향민들이 곳곳에 터를 잡으며 퍼뜨린 평양냉면 문화 속에서, 1946년 문을 연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집으로 손꼽히며 전통과 품질을 모두 인정받는 노포가 되었다.

 

시간을 이어온 메뉴와 노포의 품격

 

 

 

대표 음식은 단연 전통의 ‘평양냉면’이지만 계절과 입맛에 따라 다양한 별미를 선보인다. 새콤한 김치 국물을 더해 시원하게 즐기는 ‘김치말이 냉면’, 화, 목, 토요일에만 선보이는 ‘갈비탕’, 묵직한 국물과 든든한 고명들이 들어있는 ‘육개장’ 등이 인기가 많다. 특히 이 집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불고기는 전통 서울식 불고기의 원형을 보여준다. 달착지근한 양념장에 재운 한우 불고기를 상 위 철판에서 지글지글 구워 내는데, 과하지 않은 단맛 덕에 냉면과 곁들이기 좋다. 어느 정도 먹다가 남은 양념에 면 사리를 추가해 볶아 먹는 즐거움도 별미. 탁자 한 편에 둘러앉아 불고기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년의 단골들을 보고 있으면, 이 집이 왜 ‘노포의 품격’이라 불리는지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음식값은 분명 만만치 않지만, “가격이 아깝지 않은 고급스러운 맛”이라는 평가가 많다.

 

‘평냉계의 이단아?’ 유별난 육수가 되려 강점으로

 

우래옥 냉면의 육수는 평양냉면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유별나다고 꼽힌다. 한우 둔부살과 다리살 같은 부위를 4~5시간 푹 고아낸 뒤 한김 식혀 차게 만들어 내놓는데, 많은 전통 평양냉면 강자들이 더 맑고 더 청아한 육수를 경쟁하듯 만들 때 “마치 차갑게 식힌 갈비탕 국물 같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묵직하면서도 터프한 스타일을 내세웠다. 고기로만 만든 육수지만 느끼하지 않고 진한 육향과 감칠맛이 있어 결국 한 그릇 국물까지 모두 비우게 되는 맛이다. 간은 다른 냉면집들에 비해 제법 있는 편이라 처음 한입 땐 짭조름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이후 면과 고명을 함께 먹으면 조화가 이루어지며 먹을수록 중독적인 감칠맛이 배어 나온다.

 

고명도 독특한데, 아삭하게 절인 백김치와 채썬 배, 소고기 수육이 오른다. 삶은 달걀이나 오이는 찾아보기 힘든 대신 배와 김치를 유독 넉넉히 얹어주는데, 이는 우래옥만의 특징이다. 잘 익은 배추 김치의 시원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육향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뒷맛을 깔끔하게 해주고, 배의 아삭하고 달큰한 식감은 메밀 면발을 씹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넉넉히 담긴 배를 씹을 때 터지는 과즙과 메밀 향이 어우러지는 청량감은 우래옥 냉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풍미다. 메뉴판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주문 시 소고기 수육 고명을 돼지고기 제육으로 변경할 수 있다. 평양냉면집에서 말하는 제육이란 돼지고기를 푹 삶은 뒤 차게 식혀 썰어낸 편육을 뜻한다. 쫀득한 돼지 껍질 부분이 함께 어우러져 고소하고도 담백한 풍미를 내는데, 우래옥 냉면의 진한 육수와도 썩 잘 어울린다.

 

면발 역시 일품이다. 메밀 함량을 높여 뽑은 면은 아주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에 탄력이 느껴지는데, 젓가락으로 들어올릴 때 적당히 힘 있게 끊어진다.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이 살아 있어 씹을수록 곡물의 담백함이 퍼지며, 찰기 있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식감이 차가운 육수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우래옥은 반칙을 안 한다”는 옛 전무(店務)의 말처럼, 화려한 조미료나 자극적인 양념 없이 오직 정직한 국물과 면발의 조화만으로 승부하는 것이야말로 이 집 평양냉면의 자부심일 것이다.

 

세월을 지킨 사람들, 이어지는 이야기들

 

70여 년간 전통을 지켜오는 동안 우래옥에는 숱한 이야깃거리가 쌓였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지억 전 전무다. 1960년대 초입에 가게 카운터를 맡기 시작한 그는 무려 58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우래옥의 산증인이 되었다고 한다. 가게를 찾은 단골 어르신들부터 정재계 유명 인사들까지 두루 응대한 그의 접객 철학은 한결같았다. “모든 손님께 공평하게 친절할 것.” 실제로 과거 이곳을 찾은 권력자들에게도 특별 대우 없이 늘 똑같은 냉면 한 그릇을 내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맛의 세계에 귀천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래옥은 이러한 품위 있는 서비스로 손님들의 신뢰를 얻었고, 남녀노소 편안한 미식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우래옥을 둘러싼 재미있는 기록도 있다. 1980년대 중반 옛 한옥 건물을 헐고 지금의 현대식 2층 건물을 지을 때까지, 이곳은 기와 이엉 얹은 한옥에서 냉면을 말아내던 모습 그대로였다 한다. 세월에 낡을 대로 낡은 건물이었지만 풍기는 멋은 남달라서, 당대 예술가들과 문인들의 단골 사랑방 노릇도 했다. 건물이 새단장된 후에도 우래옥의 멋은 변함없다. 2층까지 탁 트인 실내 곳곳에는 옛 가정집 구조를 살린 작은 방들과 앤티크한 둥근 탁자들이 배치되어 있어,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서도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정갈한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분주히 오가며 질서를 잡는 광경은 마치 오래된 호텔의 다이닝홀을 떠올리게 한다. 세월이 흘러도 노포의 품격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공간 곳곳에 배어있는 듯하다.

 

이처럼 우래옥은 이제 단순한 맛집을 넘어, 한 세대의 미식 문화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 집 냉면은 먹고 나면 또 생각난다.” 우래옥(又來屋)이라는 상호처럼, 한번 다녀가면 누구나 다시 찾게 되는 집이라는 뜻일 게다. 메밀면과 맑은 육수, 그리고 오랜 내공이 빚어낸 한 그릇 음식으로 반세기 넘게 사랑받아온 우래옥. 그 육수에는 얼음 대신 시간이 녹아 있고, 그 면발에는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늘도 을지로 골목길을 찾아와 긴 기다림 끝에 냉면 한 그릇을 말아 올리는 손님들. 그들의 땀방울 어린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냉면은 살아 있다”던 창업자의 외침이 문득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전통의 맛으로, 우래옥은 앞으로도 우리의 여름과 추억을 시원하게 적셔줄 것이다.

 

 

▲ 상호: 우래옥 
▲ 주소: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화~일 11:30-21:00, 매주 월요일 휴무  
▲ 추천메뉴와 가격: 평양냉면 1만6000원, 비빔냉면 1만6000원, 불고기(150g) 4만2000원 
▲ 식신 ‘규슐랭’님의 리뷰: 평양냉면 그런거 왜 먹냐고? 아직은 걸레빤물이라며 절레절레하는 분들에게 먼저 입문용으로 추천드리고 싶은 가장 대중적인 평냉 진한 육향의 국물을 마시면 아리까리하지만 왜 열광하는지 조금 알것 같기도 하다 냉면이 어렵다면 참기름 톡톡 고소한 김치말이밥도 상당히 매력적이니 도전~ 아 물론 이 모든 도전은 미친듯한 웨이팅 퀘스트 미션을 먼저 깨야만 할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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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와 공장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을지로4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우래옥’. 1946년 평양 출신의 창업주가 첫 문을 열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식당입니다. 평양냉면 맛집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마니아층 사이에선 ‘김치말이 냉면’이 별미로 꼽힙니다. 김치말이 냉면은 밥 위로 메밀 면사리를 올린 뒤 고기 육수를 넉넉하게 붓고 김치, 배, 양지를 얹어 제공합니다. 짙은 육향이 감도는 육수에 배추김치와 나박김치의 맛이 어우러지며 한층 고급스러운 맛을 냅니다. 감칠맛 가득한 육수에 더해지는 메밀 면의 구수함이 일품입니다. 주문 시 기호에 맞게 면이나 밥을 뺄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메뉴 정보

    갈비, 갈비탕, 김치말이냉면, 냉면사리 (1), 냉면사리 (1/2), 대긴갈비, 불고기, 비빔냉면, 소금구이, 염통구이, 온면, 육개장, 육회, 장국밥, 평양냉면, 혀밑구이, 혀밑소금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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