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행사 날을 맞이하여 방문했던 한식 파인다이닝은 다방면에서 친근한 듯 생소한, 오묘한 경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기만 해도 마음 한 켠이 두근거리는 고급스러운 접시에 담긴 정갈한 비주얼의 음식들. 같은 한식이라고 해도 집에서, 생활권의 무던한 한식당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음식과는 아무래도 확연히 달랐고, 입맛을 올리는 주안상을 시작으로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코스 형태의 흐름도 퍽 인상적이었다. 한식을 그런 형태로 즐겨 보는 것이 처음이었던 터라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코스로 즐기는 한식에.. 처음 보는 고급 요리에.. 남다른 접객에.. 모든 부분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던 그날의 식사를 일상처럼 편안하게 즐겼다면 거짓말이지만, 하나하나의 맛도 익숙한 한식과는 차원이 달라 놀랐던 기억도 난다.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권우중 셰프의 파인다이닝 권숙수에서의 경험이었다. 내 인생 최초의 파인다이닝 경험이기도 하다.
사실 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 파인다이닝 씬에서 한식 파인다이닝은 가장 마이너한 장르에 가까웠다. 한국의 다이닝씬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매장의 수부터 프렌치와 일식, 중식에 밀렸고 한식 파인다이닝이라는 구체적인 장르의 인지도도 처참한 수준이었다. 고급 한식이라면 가든형 갈빗집 등의 한우구이 전문점과 고급 중식당이 우선시되었고, 정작 파인다이닝으로서는 프렌치의 선호도와 인지도가 독보적이었다. 또 하나 모순적인 부분으로, 어느 정도 보장된 퀄리티의 한식을 접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용이했기 때문에 오히려 굳이 한식을 파인다이닝으로 즐겨야 하냐는 인식이 지배적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집에서도 가까운 식당에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통 한식을 즐기기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특별한 날 기분 내며 먹기 좋은 새로운 형태의 한식당이자 가장 트렌디한 고급 식당 장르의 한 축으로서 등장하기는 했으나 대중 대상으로 인지도를 넓혀가며 자리를 확고히 굳혀 나가기에는 여러모로 존재감이 아쉬웠던 것이 그 시절의 한식 다이닝이었던 것.
그랬던 한식 다이닝이 주목받기 시작하며, 오히려 파인다이닝 장르를 주도하게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파인다이닝의 세계화 대열에 한식이 조금씩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한 끝에, 이역만리 타향에서 악전고투를 펼치며 살아남은 해외 한식 다이닝들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한식을 주제로 쉽지 않은 운영을 이어가던 여러 한식 레스토랑부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미식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국제적인 권위의 파인다이닝 어워즈에서도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여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특유의 절제미, 건강에 부담이 없는 재료 사용과 조리법, 무궁무진한 재해석이 가능한 범용성까지! 조금씩, 천천히 어필하며 다져온 한식 파인다이닝만의 특색과 경쟁력이 마침내 국제적인 파인다이닝 씬을 대상으로도 인정 받은 결과, 역으로 국내의 한식 파인다이닝까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2025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는 한식 파인다이닝이 역때 최대로, 무려 4곳이나 합류하였고 국내를 포함하는 전세계에서 한식 다이닝 열풍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 단순히 한식 파인다이닝이라는 한 장르를 넘어 한식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장 등의 발효 식품과 전통 한식 베이스의 비건식 등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으며, 아예 이 부분에 초점을 둔 신상 한식 다이닝의 오픈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파인다이닝 필드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구체화된 장르를 추구하는 요리 형태, ’하이퍼-스페시픽 퀴진’의 유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두루뭉술한 한식 다이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기보다 ‘이북식 요리 전문 파인다이닝’, ‘고조리서를 바탕으로 재현한 옛 채식을 선보이는 다이닝’, ‘프렌치를 접목시킨 모던 한식을 추구하는 다이닝’ 등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운영 형태와 확고한 정체성을 추구하는 파인다이닝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한식의 위상이 증가하며 적당한 한식 경험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구체적인 니즈를 두고 한식 경험에 나서는 외국인들도 증가하고 있기에, 한식 파인다이닝 씬의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재료 사용, 기발한 조리, 스토리텔링에 구체적인 캐릭터까지 갖춘! 새로운 한식 파인다이닝이라면, 한식이라는 이유로 식상할 리 없다. 오히려 친근한 한식을 한층 새롭고 정제된 형태로 만나는 것에서 추가적인 즐거움이 따르니, 보다 다양한 재미 요소를 갖추고 폭넓은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파인다이닝이라고 봐야 한다. 한식의 친숙함과 미식의 특별함을 모두 갖춘 맛, 공간, 접객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이번 주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특별한 신상 한식 파인다이닝 다섯 곳을 소개한다.
서울 파인다이닝 맛집으로는 청담동 밍글스, 서래마을 스와니예, 청담동 정식당, 서빙고 제로컴플렉스, 청담 강민철레스토랑, 압구정 솔밤, 역삼역 에빗, 청담동 7th Door, 역삼 알렌, 청담 레스토랑 산(SAN), 장충동 신라호텔 라연, 한남동 모수서울, 청담동 무오키(MUOKI), 서촌 물랑, 서촌 온지음, 서울역 콘피에르, 논현 알라프리마, 잠실 시그니엘서울 스테이, 소공동 피에르가니에르 서울, 도산공원 옳음(OLH EUM), 청담동 익스퀴진, 청담 드렌스덴그린, 남산 기가스, 해방촌 소울, 압구정 권숙수, 한남동 소설한남, 잠실 롯데타워 비채나, 한남 테이블포포, 남산 페스타바이충후, 역삼 조선팰리스 이타닉가든, 청담 라미띠에, 청담 그리에, 압구정 류니끄, 압구정 이스트, 장충동 신라호텔 콘티넨탈, 시청 웨스틴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 남대문 라망시크레, 잠실 소피텔 페메종, 압구정 더그린테이블, 장충동 서울다이닝, 압구정 윤서울, 청담 트리드, 논현 빈호, 청담 플럭스, 광화문 주은, 가로수길 오뇽, 청담 쵸이닷, 청담 라벤더, 청담 일드청담, 청담 한상더테이블, 논현 부르, 논현 다이닝오은, 선릉 오마치슌, 신사 이목스모크다이닝, 신사 기와강, 압구정 사라우츠(ZARAUTZ), 청담 라시네, 청담 비움, 종로 라뜰리에 꼼때 등이 유명하다.
1. 왕의 귀환, 한남동 ‘모수서울’

모수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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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파인다이닝에서 새로이 타이틀을 노리는 신예의 자세로 돌아온 안성재 셰프의 컨템포러리 한식 파인 다이닝. 오픈 소식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의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파인다이닝으로, 기술과 요리사로서의 자세 모두 정점에 올랐다는 평을 받는 안성재 셰프의 지휘 하에 디저트 다이닝 엘라보레를 운영했던 김요솔 셰프 등 여러 걸출한 셰프들이 합류해 이태원에서 재오픈했다. 대표 메뉴이자 단일 메뉴는 디너 테이스팅 코스. 전국에서 공수한 최상급 재료의 가장 맛있는 부분만 사용해, 기계의 테크닉에 가까운 정밀하고 섬세한 조리를 거쳐 제공되는! 모수이자 안성재 셰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다.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요란한 느낌 없이 보통의 파인다이닝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상당히 절제된 인상이 강하지만,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스르르 내적 감탄부터 자아낼 정도로 응축된 완성도는 차원이 다른 수준. 코스를 구성하는 모든 디쉬가 작은 한 접시에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맛과 완성도를 극한까지 압축해 담아냈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 하나 과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여백과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며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잡았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하다. 한 접시에 아담하게 제공되는 요리 하나만으로도 온갖 식재료를 여러 스타일로 푸짐하게 차려두고 즐기는 것과 대등한 수준의 만족도를 선사하는, 그야말로 파인다이닝에 걸맞는 코스인 것이다. 계절 채소 타르트와 도토리 국수 등 반가움을 더하는 한남동 시절의 시그니처 메뉴들도 건재하다. 특히 안성재 셰프를 대표하는 디쉬로도 유명한 도토리 국수는, 잉걸불에 태운 국산 도토리를 사용해 반죽한 면부터 수북이 올려내는 트러플까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은 그 조합 그대로 식객들을 맞이한다. 파인다이닝과 미식 경험에 진심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꼭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독보적인 퀄리티의 파인 다이닝으로 추천한다.
▲위치: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41길 4
▲영업시간: 화-토 18:00 - 22:00, 일·월 휴무
▲가격: 디너 테이스팅 코스 42만원
▲후기(식신 471555):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예약 하기가 은근 힘들더라구요.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특별한 날 가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2. 프렌치 셰프가 풀어내는 한국의 맛, 압구정 ‘기와강’

기와강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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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철 레스토랑’으로 국내 클래식 프렌치 다이닝의 한 획을 그은 강민철 셰프가 새로이 오픈한 컨템포러리 한식 파인다이닝. 한국의 식재료로 프렌치 요리사가 프렌치 스타일을 더해 재해석한, 유연한 스타일의 모던 한식을 추구하며 런치와 디너 두 가지 테이스팅 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 코스를 구성하는 모든 디쉬가 공유하는 기와강의 스타일이라면, 친근하고 익숙한 재료의 재해석. 동치미와 간장게장 등 한국인이라면 친숙할 수밖에 없는 음식들이 익히 알고 있는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제공되지만 맛을 보는 순간 확실히 드러난다. 아는 음식인데 아는 음식이 아니고 익숙한 맛이 익숙한 맛이 아니다. 친숙한 한식들을 코스의 구성으로 다루되 전처리부터 소스, 익힘, 플레이팅, 온도 등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어울리는 프렌치 요소를 접목시키고 재해석하여! 확연히 새로운 풍미와 식감으로 맛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다양한 미식 경험, 그중에서도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지대한 미식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한식 파인다이닝인 셈이다. 강민철 레스토랑에서부터 음식 맛 못지 않은 매력 포인트로서, 여러 식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센스 넘치는 기물 사용도 여전하다. 단순히 화려하고 비싼 식기로 시각적 만족을 주는 수준을 넘어, 코스의 아이덴티티, 흐름, 디쉬의 제공 순서와 역할까지 고려한 섬세한 활용으로 경험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차분하고 우아한 공간과 훌륭한 음식, 최적화된 식기까지 전부를 아우르며 미식 경험을 완성하는 훌륭한 접객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 독특함과 완성도, 양면에서 뛰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한식 코스를 만날 수 있는 신상 한식 파인다이닝으로 추천한다.
▲위치: 서울 강남구 논현로152길 9
▲영업시간: 화-토 12:00 - 22:00(B·T 14:30 - 18:00), 일·월 휴무
▲가격: 런치 테이스팅 메뉴 18만원, 디너 테이스팅 메뉴 32만원
▲후기(식신 명수세끼): 익숙한 한식 그대로인 요리도, 누가 봐도 프렌치인 음식도 있는데 맛은 대체로 한식의 그 맛이 있는 게 신기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