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에 고된 일과로 심신이 두루 힘든 날이면 뜨듯한 한 그릇으로 위로받고 싶은 건 만국공통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구수한 향미, 입구 근처에서부터 북적북적 느껴지는 사람 내음.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발걸음 따라 향하다 보면 스르르 닿게 되는 공간에서 주문하게 되는 메뉴는 뻔하다. 오랜 시간 끓고 또 끓으며 깊은 맛을 머금은 국물에 먹기 좋게 토렴된 밥. 푸짐한 건더기까지 어우러진 투박한 서민음식의 대명사. 여기 따끈한 국밥 하나요! 대단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도, 흔히 접하기 힘든 이국적인 음식도 아니건만 언제나 그렇다. 수수한 국밥 한 그릇의 힘이, 더하는 온기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심리적인 친근함과 가성비만으로 국밥이 오늘날의 인기와 위상을 얻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역마다 고유의 국물 요리가 있고 말아먹기 좋은 적당한 찰기의 쌀이 재배되는 환경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기본적인 수질이 좋은데다 쌀을 포함한 주류 식재료의 특징, 오래도록 이어지며 자리잡은 취식 방법 등이 맞물려 환경적으로도 국밥이라는 장르가 탄생하기에 적합했다고 봐야 한다. 국물 음식에 거부감이 없고 또 국물음식이 발달하기 쉬운 환경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후기 상업이 발전하며 주막을 중심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장국밥이 오늘날의 국밥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은 문화, 역사,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국밥이 여러 지역에서 지역 특색에 맞게 발전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친숙한 대부분의 국밥 또한, 지역마다 존재하는 국물 요리와 취식 문화에 적합한 형태로 전국 각지에서 향토 국밥이 탄생하고 자리잡는 과정에서 탄생하기도 했다. 전북권의 콩나물국밥이 그렇고 강원도 진부와 평창을 중심으로 하는 황태국밥이 그러하며 부산과 밀양에서 발전한 돼지국밥이 그렇다.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국밥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발전은 정체된 고루한 향토음식의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프렌치 조리 기술을 접목시킨 돼지국밥과 같은 새로운 국밥도 속속 합류하며 국밥의 범주는 여전히 팽창 중인 상태다. 무궁무진한 종류에 전국 어디에서나 특색 있게 즐길 수 있으며, 멈추지 않고 성장해나가고 있는 장르가 현재 한국의 국밥이다.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인 신규 식당들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타 장르와 달리, 여전히 노포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국내 국밥씬의 특징이다. 달라진 수요에 맞게 필요한 변화를 꾀하는 파격적인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는 많은 국밥 명점들을 보면 그러하다. 옛맛을 지키고 최대한 그대로 이어나가고자 오래도록 지켜온 틀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 많다. 맛을 위한 요소들이야 그렇다 쳐도 주방 환경 등 변화를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 부분까지 옛 방식 그대로 국밥을 내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극히 미세한 일부의 변화로도 꾸준히 지켜낸 맛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와 맛내기 외에도 작업하는 환경, 일하는 방식의 변화만으로도 아예 다른 음식처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섬세한 음식이 국밥이기 때문이다. 투박한 장비를 사용하고 언뜻 거칠어 보이게 조리해 내지만, 사실 누구보다 국밥 한 그릇에 이해도가 높고 진심인 셈이다. 이러한 명점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국밥을 추억의 맛 그대로 언제든 편안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봐도 되겠다.
오늘 소개할 식당들도 다르지 않다. 정성스레 고집스레 지켜온 맛의 한 그릇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따스함을 건네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 지친 몸과 마음에 훈훈한 위로로 다가올 국밥 맛집 다섯 곳을 소개한다.
1. 말도 안 되는 가격의 깔끔한 한 그릇, 수유 ‘옛곰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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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와 양지를 넉넉히 담아내는 양지국밥이 대표메뉴. 별다른 조미를 하지 않고 숙성 우거지의 맛과 양지의 감칠맛 위주로 맛을 낸 국밥이라 슴슴하면서도 깊다. 담백깔끔한 맛에 술술 넘어가지만 빈 공간은 느껴지지 않는 꽉 찬 맛이다. 보들보들한 식감의 우거지와 양지 고기를 한 입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는 즐거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양지와 사태의 살코기만 소복하게 쌓아 내는 맑은곰탕도 이름 그대로 맑게 우려낸 국물이 곰탕을 즐기지 않는 이가 먹기에도 부담 없는 수준. 기름기를 거를 대로 걸러 잡티 하나 없는 국물이, 입 속에서도 걸리는 부분 하나 없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넉넉한 양의 국내산 육우 사태와 양지를 건져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맛도 이렇게나 좋은데, 어려운 시기 모든 메뉴가 합리적인 걸 넘어 착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육수만 본다면 고급 평양냉면집과 비교해도 크게 쳐지지 않는 수준급 평양냉면을 보기 드문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시장 구경에 앞서 든든하고 맛좋은 한끼를 위해 들러 볼 만하다. 국밥류는 국물과 밥의 어우러짐과 온도감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토렴 상태로 제공되나, 원하는 경우 밥을 따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
▲위치: 서울 강북구 도봉로71가길 4
▲영업시간: 월-토 08:00 - 19:00, 일요일은 13:00 - 15:00
▲가격: 맑은곰탕 7000원, 양지국밥 7000원, 평양물냉면 7000원
▲후기(식신 마르게리따): 가격이 미쳤는데 맛은 더 미쳤어용 너무 맛있습니다 깔끔한데 깊어요 기름기는 싹 걸러내서 잡티 하나 없고 고기들도 잡내없이 촉촉합니다 냉면도 맛있는 집이긴 한데 그래도 여기는 양지국밥이랑 곰탕이 진짜 맛있으니.. 일단은 둘 중 하나로 먼저 스타트 끊어 보는 걸 추천해요
2. 대전을 대표하는 국밥, 대전 ‘원조 태평소국밥’

공식 네이버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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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감칠맛의 산뜻한 국물이 매력적인 소국밥 맛집. 소고기뭇국과 갈비탕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으로, 익숙한 듯 새로운 느낌으로 맛있고 양도 푸짐하다. 어지간한 숙취는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칼칼함도 적당히 품고 있어 부담없는 해장용 국밥으로도 그만이다. 넉넉한 양에 합리적인 가격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운 맛의 육사시미도 놓치면 안 되는 메뉴. 남다른 신선도에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예사롭지 않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2인 기준 국밥 두 그릇에 육사시미 한 접시 곁들여 즐기면 딱 좋다. 보다 얼큰하고 진한 맛을 선호하는 취향이라면 내장탕도 나쁘지 않은 선택. 다양한 내장 부위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고, 충분히 기름기가 우러난 고소하면서도 매콤한 국물에 수저질을 반복하게 되는 마성의 내장탕이다. 푸짐한 양에 칼칼하게 졸여내 입맛 당기는 중독성도 갖춘 매운 소갈비찜도 여럿이 방문이라면 하나 주문해 함께 즐겨봄직하다. 대부분의 메뉴가 주문하면 늦어도 3분 안에는 제공되는 진정한 코리안 패스트푸드인 건 덤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국밥이 궁금하다면, 대전에서 정말 맛있는 국밥을 먹고 싶다면! 한 번은 꼭 들러 볼 가치가 있는 맛집으로 추천한다.
▲위치: 대전 중구 태평로 116
▲영업시간: 매일 24시간 영업
▲가격: 소국밥 9000원, 한우육사시미 1만2000원, 소내장탕 9000원, 매운소갈비찜 중 2만9000원
▲후기(식신 슈가보이): 살코기 위주의 깔끔한 국밥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만족하실 것 같아요. 소고기 뭇국 비슷한 느낌도 있어서 아주 생소한 스타일도 아닙니다. 누구나 익숙하게 좋아할? 그런 국밥이고 고기도 많이 들어 있구요ㅋㅋ 아 생고기도 꼭꼭 하나 곁들이셔야 합니다 진짜 맛있고 국밥이랑도 잘 어울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