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FAQ
Q. 나주곰탕은 설렁탕과 무엇이 다른가요?
A. 설렁탕·사골곰탕이 뼈를 오래 고아 뽀얀 국물을 내는 반면, 나주곰탕은 소뼈 없이 살코기만 6시간 이상 고아 맑고 담백한 국물을 만든다
Q. 왜 나주에는 곰탕집이 유독 많나요?
A. 일제강점기 일본군 소고기 통조림 공장 영향으로, 고급 부위는 반출되고 남은 살코기 부산물이 지역에 풀리면서 고기 위주 맑은 곰탕 문화가 자리 잡았다
Q. ‘모양은 전주요, 맛은 나주’라는 말의 의미는?
A. 전주는 음식의 형식미, 나주는 맛의 깊이를 상징한다는 표현으로 나주곰탕의 실질적인 맛 경쟁력을 강조한 말이다
전남 나주시 금계동. 조선시대 관아였던 금성관 앞으로 펼쳐진 이 일대는 '나주 곰탕거리'로 불린다. 나주곰탕 하얀집, 남평할매집, 그리고 노안집. 나주 3대 곰탕집이 반경 100여 미터 안에 모여 있는 이곳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곰탕의 성지다. 그중에서도 빨간 간판이 눈에 띄는 '나주곰탕노안집'은 1960년 장터 국밥집으로 시작해 60년이 넘는 세월을 한자리에서 지켜온 3대 노포다. 뽀얀 국물의 설렁탕이나 사골곰탕과는 확연히 다른, 맑고 투명한 나주곰탕. 찬바람 부니 더 생각나는 나주 곰탕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알고 보면 구슬픈 나주곰탕의 유래
나주에 곰탕집이 유독 많이 생겨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나주에 군용 소고기 통조림 공장을 대규모로 지었는데, 이곳이 일본군의 식재료 조달기지 역할을 했다. 등심, 안심, 채끝 등 고급 부위는 통조림으로 가공해 일본군으로 보내고, 남은 부산물들은 현지 노동자나 상인들에게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나눠줬다. 당시 나주에는 5일장 등에서 장국밥을 취급하는 식당들이 있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고기를 많이 구하다보니 국물이 뿌옇게 되는 소뼈를 쓰기 보다는 고기 위주로 고아 맑은 국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소는 워낙에 고급 식재료인 만큼 다른 지방에서는 뼈까지 아낌없이 쓰는 곰국 중심인데, 유독 나주에서 맑은 탕이 유행한 것은 이 때문이었으리라. “모양은 전주요, 맛은 나주”라는 옛말처럼, 나주가 맛있는 곰탕으로 유명해진 건 이런 슬픈 역사 덕분에 부산물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결과라는 사실이 흥미로우면서도 아이러니하다.
나주곰탕노안집의-외관 식신유저리뷰
오늘 소개하는 노안집의 역사는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설에는 1963년이라고도 전해지는데, 어쨌든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주 3대 곰탕집 중 하얀집이 1910년 개업으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면, 노안집은 1960년부터 3대째 운영 중이고, 남평할매집은 1975년에 문을 열었다.
나주곰탕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바로 맑고 투명한 국물이다. 일반적인 설렁탕이나 사골곰탕이 뽀얀 우윳빛 국물인 것과 달리, 나주곰탕은 소의 뼈 없이 살코기만 넣고 6시간 이상 푹 고아낸 국물이라 맑고 담백한 맛을 낸다. 양지, 사태, 목심, 머릿고기 등의 살코기를 주로 사용하며, 제조 과정에서 양념을 거의 넣지 않고 본래의 구수한 맛을 최대한 살린다. 국물이 충분히 우러나면 면포에 걸러 맑은 국물을 만들고, 기름기를 제거하여 더욱 깔끔하게 정리하여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