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식신 기사식당 로드
제 9화 윤화돈까스

2453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밴드
  • URL 복사

기사식당 로드

제 9화

<추억이 가득한 한국식 돈가스의 맛, 윤화돈까스>



벌써 4월이다. 햇볕이 따뜻한 게 제법 봄 날씨답다. 따뜻한 볕을 쬐고 있으려니 오래 전 학창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새 학기의 깨끗한 종이 냄새가 폴폴 날리던 3월 초, 처음 보는 또래 친구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다가 한 달 정도 지나면 으레 갓난쟁이 때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붙어 다니곤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같이 얼굴 보는 사이지만, 주말에도 습관처럼 만나 시내를 잘도 싸돌아 다녔다. 그때 우리의 아지트가 바로 작은 경양식집이었다. 외식이라고는 떡볶이가 전부였던 우리에게 폼 나는 음각 장식의 나이프로 ‘칼질’을 할 수 있는 경양식집은 학창시절 최고의 사치였다. 이 날을 위해 평일엔 용돈을 좀 아껴서 썼는데, 간혹 돈이 조금 모자라는 날에는 준비물이 부족하다며 거짓으로 용돈을 더 타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경양식집은 그야말로 부티가 났다. 휘황찬란한 레이스 무늬가 있던 푹신한 의자와 커튼이 실내를 장식하고 있었다. 돈가스는 다리가 있는 쟁반에 올려져 나와 고고한 자태를 더했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와 당근볶음, 새콤달콤했던 오이피클의 조화가 대단했다. 정신 없이 돈가스를 먹어치우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싹싹 비웠다. 나는 그 경양식 집에서 나름 코스요리를 먹는 기분을 내곤 했다.


지금도 가끔 그곳의 돈가스가 생각난다. 돼지고기를 살살 두드려 얇게 펴서 튀겨낸 뒤 달짝지근한 소스를 듬뿍 끼얹어 내는 그 돈가스의 맛이. 지금은 두툼한 고기를 튀겨 바삭바삭한 상태로 소스에 찍어 먹는 돈가스집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가장 트렌디한 방식이었다.


간편하고 든든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기사식당의 메뉴 중에서도 돈가스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독특한 점은 대부분 얇고 넓은 고기를 내는 왕돈가스의 형태라는 점이다. 성북동의 금왕돈가스를 비롯한 몇 개의 기사식당이나 남산에 위치한 왕돈가스집 등이 있다. 오늘 이야기를 할 강남에 위치한 ‘윤화돈까스’도 큼직한 왕돈가스를 판매하는 곳이다.


아침을 먹을 겸 오픈 시간보다 일찍 들렀는데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가게 입구에는 그날그날의 판매량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양배추와 풋고추가 가득 쌓여있었다. 주황색 조리복과 모자를 단정하게 맞춰 입은 직원들이 곧 들이닥칠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ㅣ윤화돈까스 방문~




ㅣ양배추가 가득 쌓여있다.




ㅣ메뉴




ㅣ실내 전경. 가구들은 낡았지만 깔끔하다.




ㅣ고기를 가득 쌓아놓고 분주하게 손질하고 있다.




ㅣ가게 문을 열자마자 몰려온 손님들





일등으로 착석해서 메뉴를 고르는 사이에 손님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대여섯 테이블이 금방 찼다. 오랜 단골이신 듯한 택시기사님부터 넥타이를 맨 채 아침을 먹으러 들어온 직장인, 편안한 복장의 여성들까지..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한 끼의 즐거움을 누린다.


이곳은 돈가스와 함박가스가 유명한데, 이 두 가지 메뉴와 생선가스를 더해 3가지의 메뉴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윤화정식’도 있으니 대식가라면 참고하면 좋다. 따뜻한 수프에 후추를 톡톡 뿌려서 맛보다가, 배가 고파져 테이블에 놓인 풋고추를 몇 개 집어먹었다. 기사식당은 주메뉴를 막론하고 풋고추를 함께 내는 곳이 많다. 사장님께 여쭤보니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라며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자신감(?)을 비치신다. 기원이야 어찌 되었건, 풋고추는 느끼한 메뉴 일색인 기사식당의 음식을 깔끔하게 정화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택시 안에서 앉아 운전하는 기사님들의 비타민C 보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돈가스가 나온다. ‘와 정말 크다!’






ㅣ윤화돈까스의 돈가스.




ㅣ한 상차림.




ㅣ사이즈는 이 정도




ㅣ배고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칼질




ㅣ얇게 두드려 편 부드러운 고기





돈가스와 함박가스 모두 약간 된 질감의 소스를 듬뿍 뿌려 내온다. 한 입 먹었더니 갓 튀긴 돈가스와 소스의 따뜻한 맛이 입안에서 감돈다. 내가 이 경양식 스타일의 돈가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소스에 있다. 흔히 일본식 돈가스라고 불리는 형태의 돈가스는 두툼한 크기 때문에 튀기는 시간부터 오래 걸린다. 그래서 돈가스가 튀겨지는 동안 손님에게 깨가 담긴 절구 그릇을 주며 당당히 노동을 요구한다. 깨를 갈고 또 갈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돈가스가 나온다. 그러면 깨그릇에 진한 돈가스 소스를 붓고 슥슥 섞어 돈가스를 콕 찍어 맛본다. 그러면 소스의 찬 맛이 먼저 입에 닿아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얇은 고기에 따뜻한 소스를 듬뿍 끼얹어 보들보들한 돈가스가 좋다. 왠지 소화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탕수육으로 치면 ‘부먹파’라고 보면 좋겠다. 짭짤한 고기의 맛을 보다가 쌀밥을 한 덩이 입에 넣어 짠맛을 중화시켜 가며 튀긴 돼지고기 고유의 고소한 맛을 즐긴다. 돈가스를 몇 점 집어먹다 보면 반드시 입이 느끼해지는 타이밍이 오는 데, 보통 단무지나 피클 등으로 입가심을 한다. 그러면 짠맛이 과잉이라 금세 물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돈가스와 풋고추를 곁들여보니 궁합이 매우 좋다. 기름진 입안을 풋고추가 헹궈주며 약간의 매운맛이 돌아 입맛이 더 돈다. 돈가스와 풋고추를 번갈아 먹다 보니 그 큰 돈가스를 끝까지 다 먹었다. 문득 신대방의 왕돈가스 집이 생각났다. 풋고추를 가져가면 왠지 대왕 돈가스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또 다른 메뉴인 함박가스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함께 다져 넣은 속에 튀김옷을 한 벌 입혀 튀겨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느껴지는 맛이다.





ㅣ독특한 모양새의 함박가스(6,500원)




ㅣ누구냐 넌




ㅣ도톰한 옆태




ㅣ튀김옷 속에 다진 고기 속이 보인다.




ㅣ돈가스를 포장해 가는 손님들도 종종 있었다.




ㅣ일등공신. 풋고추





한자리에서 30년이 조금 안되게 장사를 하고 있는 윤화돈까스. 지금의 사장님은 90년대 초에 가게를 이어받아 지금껏 운영해오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돈가스와 샐러드, 마카로니는 물론 풋고추에 찍어 먹을 쌈장까지 직접 만들어서 낸다. 작은 가게에 조리와 서빙만 9명, 주차를 도와주는 직원이 3명에 달하는 데, 불경기를 체감하지만 함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택시 기사님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사장님의 말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오래가는 식당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식신의 TIP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546-2

•메뉴: 돈까스•생선까스•함박까스•북어국•치킨까스 6,500원 / 함박까스(호주산) •윤화정식 7,500원

•영업시간: 9:30 ~ 22:10

•밥 추가: 무료

•자판기 커피: 무료

•주차공간: 7대






  • 윤화돈까스

    서울-강남-역삼역, 경양식/돈가스 > 세계음식
    출처 : 식신 기사식당로드
    출처 : 식신 기사식당로드
    출처 : 식신 기사식당로드
    출처 : 식신 기사식당로드
    출처 : 식신 기사식당로드
    돈가스 전문 기사식당입니다. 메뉴로는 돈까스, 생선까스, 함박까스, 치킨까스, 북어국, 윤화정식 등이 있습니다. 돈까스는 두께는 얇지만 큼지막한 크기가 특징입니다. 소스가 부어져 나오는 방식으로 양배추 샐러드가 함께 나오며 스프와 장국이 제공됩니다. 윤화정식 주문시 함박, 생선, 돈까스, 3가지를 다 즐길 수 있습니다. 식사시간에는 기사님들과 인근의 직장인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메뉴 정보

    돈까스, 윤화정식(돈까스&생선&함박), 생선까스, 반반(돈까스&생선까스), 돼지 함박까스, 소 함박까스, 고구마치즈까스, 치즈까스, 치킨까스, 갈비탕, 제육볶음, 피쉬앤칩스

    별 인증 히스토리

    맛집 근처 위치

댓글

0
(0/1000)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