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다방

세월 묵직한 다방에 갔다. 옛날의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 듯 손때 묻은 풍경이 펼쳐졌다. 낡은 테이블에 앉아 친숙한 차 한 잔을 주문했고, 여전함이 주는 아련한 행복에 시린 몸을 녹였다.

글, 사진 박은경

서울 학림다방

1956년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 자리 잡은 학림다방은 60년간 한자리를 지킨 대학로의 터줏대감이다. 학림이라는 이름은 서울대 문리대 축제였던 학림제에서 유래했다. 주로 서울대생들이 즐겨 찾아 ‘서울대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문인들과 예술인들도 학림다방을 아지트로 삼으며 들락거렸다. 천상병 이청준 김지하 김승옥 김민기 등이 학림에 앉아 글을 쓰거나 예술을 논하며 피 끓는 청춘을 보냈다. 1965년 1월 수필가 전혜린이 생의 마지막 날 찾았던 곳 역시 그녀의 아지트였던 학림다방이었다.

예전처럼 문인과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학림을 찾는다. 최근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젊은 사람들과 외국 손님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학림다방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가깝다. 간판 아래 좁은 입구를 지나 삐꺽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세월을 곱게 덧댄 다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좀 전에 지나온 소란한 대학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다방은 복층 구조로 되어 있다. 2층 난간에는 클래식 연주자들의 초상이 걸렸다. 학림의 주인인 이충렬 대표가 30년 전 음반사에서 얻은 달력 사진이다. 그들도 학림과 함께 나이를 먹었는지 얼굴에 주름이 졌다. 아래 벽에는 주인장이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이충열 대표는 학림의 4번째 주인이다. 1986년 바로 전 주인이 학림의 단골이었던 그에게 가게를 넘기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1층과 2층은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 2층이 좀 더 아늑했다. 흡사 다락방 같은 느낌이다.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면 주인장이 커피 내리는 모습,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학림은 커피가 맛있는 집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와 추억만 믿고 커피를 소홀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든 커피는 직접 로스팅한 학림 블랜드로 만들어진다. 학림 블랜드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는 모두 네 종류다. 제일 연한 커피는 아메리칸, 스탠더드 커피는 레귤러다. 좀 더 진하게 마시고 싶으면 스트롱이나 로열 블랜드를 택하면 된다. 학림의 대표 메뉴인 로열 블랜드는 서너 잔 분량의 원두를 한 잔의 물로 내린, 아주 진한 맛의 커피다.

비엔나커피도 인기가 좋다. 커피에 무스처럼 보드라운 크림을 얹고 시나몬 파우더를 솔솔 뿌려준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지만 크림 가장자리에 커피색이 올라오길 기다렸다가 크림 봉우리를 떠먹을 때 가장 맛이 좋다.

직접 만드는 크림치즈케이크도 빼먹으면 아쉽다. 토끼 문양이 새겨진 케이크는 푸딩처럼 부드럽고 구름처럼 뽀얗다. 오렌지 잼과 블루베리 잼 중 하나를 선택해 곁들여 먹는다.

주소 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 혜화동 로터리 방향 50m) 전화 02-742-2877 이용시간 10시~자정, 연중무휴 홈페이지 hakrim.pe.kr 메뉴 레귤러 4500원, 아메리칸 4500원, 스트롱 6000원, 로얄 블랜드 8000원, 비엔나커피 5500원, 크림치즈케이크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