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범상치 않은 내공의 순댓국
신당동 ‘약수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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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로하는 듯한 정겨운 골목

 

지하철 약수역 10번 출구를 나서면,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순댓국 냄새가 따라온다. 노포와 신생 식당이 뒤섞인 이 일대는 오랜 세월 ‘순댓국의 밀집지’로 불려왔다. 재래시장과 정육 유통이 활발했던 약수시장, 주변 공사장과 물류 상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발길이 만든 순댓국 수요, 그리고 초창기 순댓국집들의 입소문이 겹쳐지며 자연스럽게 ‘순댓국 골목’이 형성된 곳이다.

 

그 중심에서 1977년 개업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곳이 바로 ‘약수순대국’이다. 시장 골목에서 시작해 2023년 지금의 상가 건물로 자리를 옮긴 이 노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첫 국물 솥을 지키는 땀냄새와, 식당 안을 채우는 뜨끈한 육수 향으로 손님을 맞는다. 국밥 한 그릇 안에 구수한 순대, 부드러운 머릿고기, 정직한 토렴의 정성이 녹아 있는 이곳은, 순댓국이 단순한 서민 음식 그 이상이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서울의 대표적 노포다.

 

 

‘죽기 전 먹을 딱 한가지 음식’

배우 박성훈은 한 방송에서 이 집을 두고 ‘죽기 전에 딱 한 가지만 먹어야 한다면 약수순대국을 먹겠다.’고 말했다. 또 두산뉴스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자사의 박정원 회장이 즐겨 찾는 집으로 이곳이 소개되기도 했다. 눈으로만 보면 일반 순대국과 별 차이 없어보이는 단촐한 해장국 하나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소울 푸드’로 손꼽는 음식이 되었는지는 먹어보면 알 수 있다.

 

 

멀건 국물인데 내공이 보통이 아니네

 

 

이전 위치에 비해 한결 쾌적해진 식당에 들어서면 언제나 북적북적한 손님들이 먼저 반기는 듯하다. 환히 보이는 주방 너머로 커다란 탕기에 뜨거운 국물을 붓고 따라 내는 동작이 반복된다. 이곳에선 전통 토렴 방식으로 순댓국을 낸다. 미리 말간 국물에 밥을 말아 여러 번 나누어 부었다 따르는 토렴 과정을 거치면, 밥알 하나하나에 국물의 진한 풍미가 스며든다. 국밥 한 그릇을 토렴하는데 국자가 열번 이상 움직인다. 그야말로 정성이다. 거듭된 토렴으로 밥알이 통통하니 반질반질 윤이 날 때쯤, 드디어 완성된 한 그릇이 손님 앞으로 놓인다.

 

요즘 순대국집들을 가만 보면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데, 이곳은 입이 쩍쩍 달라붙는 묵직하고 꼬릿한 순대국이 아닌 겉보기에 비교적 맑고 투명한 쪽이다. 돼지 뼈와 머릿고기 등을 우려내면서 기름기 제거가 잘 된 국물은 마치 설렁탕처럼 멀겋고, 한 모금 들이켜면 잡내 없이 개운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처음부터 다대기(양념장)와 잘게 썬 파, 청양고추, 들깨가루 등이 적당히 곁들여져 나오는 것도 이 집만의 방식이다. 올려진 양념을 잘 푼 뒤 살짝 붉은 기가 도는 국물을 맛보면 매콤함과 구수함의 조화를 이루는데, 양념이 과하지 않아 본연의 깊은 맛을 살려준다.

 

 

이름은 순대국이지만, 순대보단 고기가 중심

 

국밥을 숟가락으로 살짝 저으면 밥 아래에 숨겨져 있던 건더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통통한 순대와 두툼하게 썰린 고기가 그릇을 꽉 채우고 있다. 가격도 만만치 않은 곳이 당면순대를 쓴다고 말이 많은데, 막상 음식을 받아보면 ‘이 집은 순대보다는 고기에 더 진심인 곳이구나’ 느낄 수 있다. 잘 손질된 오소리감투, 돈설, 두항정 등의 부속과 머릿고기들이 큼직하고 두텁게 썰려 들어있는데, 밑손질을 잘 해서인지 잡내 없이 부들부들하다. 다른 순댓국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간’도 몇 점 들어있는 것이 흥미롭다. 담백한 국물을 머금은 촉촉한 간이 나름 별미다. 그릇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고기가 계속 나올 정도로 푸짐해 순댓국을 시킨건지 머릿고기 수육을 시킨것인지 헷갈릴 때쯤이면, ‘바쁜 시간에는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야속하기만 하다.

 

이 집에서 국밥과 곁들이는 반찬은 단출하다. 새콤하게 익은 깍두기와 새우젓을 비롯한 양념들. 깍두기는 보조출연자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 담백하고 고소한 이 집 국물맛을 해치지 않도록 맛이 진하지 않다. 또 하나의 숨은 보물은 바로 ‘새우젓’. 뚝배기 국밥집들에서 흔히 보는 잘게 풀어진 새우젓과 달리, 이곳은 형태가 또렷하고 큼직하다. 품질 좋은 새우젓은 비리거나 짜지 않아, 한 스푼 국물에 슬쩍 풀어 간을 맞추면 은은한 감칠맛이 더해져 국물 맛이 한층 깊어진다. 머릿고기에 새우젓 하나씩을 얹어 먹기에도 좋다.

 

 

소주 한잔의 친구, 머릿고기 수육

 

국밥 한 그릇으로는 아쉬운 날이라면, 머릿고기를 추천한다. 주문 즉시 손질해 나눠두었던 여러 부위의 고기들을 국밥 토렴하듯 한번 가볍게 삶아낸다. 그리고 넓은 접시에 그대로 건져 내어주는데, 요즘 인스타 맛집들에서 유행하는 ‘플레이팅’과는 하나도 관계가 없어보이는 이 투박함이 오히려 소주를 부른다. 손 큰 사장님이 역시나 큼직큼직하게 손질한 머릿고기는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맛이 아주 좋다. 살코기와 비계가 층을 이룬 머릿고기 한 점을 들어, 위에서 설명한 통통한 새우젓과 슬라이스한 고추를 곁들여 먹으면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메뉴를 안주삼아 소주 한 잔 기울이는 단골들도 많아, 식사 시간대를 한참 지난 오후에도 빈자리가 드문 편이다. 다만 술을 오랫동안 즐기는 분위기의 가게는 아니기 때문에 포장하는 방법도 추천하는 편이다.

 

 

묵묵히 서울 한복판에서 시간을 요리하는 집

 

한결 같은 위로의 맛은 요란하지 않다. 뜨거운 솥과 작은 탕기 안에서 조용히 제 맛을 내듯, 약수순대국도 늘 그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속을 덥힌다. 세월이 흐르며 식당은 시장 골목에서 상가 건물로 옮겨졌고, 간판도 달라졌지만, 진한 국물 속에 담긴 정성과 철학만큼은 변함이 없다. 또 요즘 인기 있는 순대국집들이 더 짙고 묵직한 풍미를 경쟁하는 것과 달리, 약수순대국의 국물은 한결같이 맑고 단정하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이곳의 방식은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손님들의 속을 따뜻하게 달래준 국밥 한 그릇에는 그런 꾸밈없는 정성과 고집이 담겨 있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옛 방식 그대로 끓여내는 국밥은 투박하면서도 진실되게 다가와, 한 입 먹을 때마다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허기진 노동자의 아침을 채우고도, 속풀이하러 온 단골의 해장을 거들고도, 이 집 국밥은 언제나처럼 뜨겁고 푸근하다. 반백 년의 시간을 한 그릇에 녹여낸 약수순대국은 그야말로 서울의 살아있는 맛의 역사다. 투박한 그릇에 담긴 뜨끈한 순댓국을 앞에 두고 있노라면,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서도 문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 시대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을 말아내는 토렴 솥 앞에서, 수십 년 간 이어져온 삶의 이야기가 오늘도 조용히 익어간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에 담긴 깊은 맛처럼, 약수순대국은 오래도록 우리의 곁에서 한결같은 위로의 맛을 전해줄 것이다.

 

 

▲상호: 약수순대국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7길 14
▲식신 별등급: 3스타
▲영업시간: 10:00 ~ 19:20 (매주 일요일 휴무)
▲추천메뉴와 가격: 순대국(일반) 12,000원, 순대국(특) 14,000원, 머릿고기 30,000원
▲식신 아메바메바님의 리뷰: 원래 따로 국밥을 좋아하는데 여기는 토렴해서 나오는 게 어찌나 맛있던지~ 고기가 정말 많은데 마지막 한 숟갈 뜰 때 까지도 계속 나온다. 처음에 순댓국집 줄이 뭐 이리 기나 했는데 납득이 가는 맛이다.

  • 약수순대

    서울-강북-약수/옥수/금호, 순댓국/순대 > 한국음식
    출처 : 약수순대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출처 : 약수순대국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출처 : 약수순대국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출처 : 약수순대국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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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수동 일대에서는 유명한 오래된 순댓국집입니다. 당면과 선지가 들어간 스타일의 순대로 3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곳입니다. 식사 시간 대에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야 할 때가 많으므로 평일에 가볼 것을 추천합니다.

    메뉴 정보

    머릿고기, 순대국(보통), 순대국(특)

    별 인증 히스토리

    맛집 근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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