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육수와 메밀면의 감동,
충무로 ‘필동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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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is coming“, 냉면의 계절이 온다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고 있다는 미드 ‘왕좌의 게임’ 속 경고는 매서운 추위를 예고하지만, 한국의 여름을 앞두고는 조금 다른 기대감이 떠오른다. 바로 ‘Summer is coming.’ 땡볕 아래에서 땀을 식혀줄 한 그릇의 냉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이다. 짜릿하게 차가운 국물, 부드럽게 넘어가는 메밀 면발, 수수한 고명과 함께 펼쳐지는 냉면의 계절.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지만, 그래도 여름의 냉면은 더욱 기대가 된다. 곧 다가오는 여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냉면 투어를 다닐 생각에 마음이 설레게 된다.

 

 

평양냉면, 겨울 음식에서 여름 별미로

흥미롭게도 평양냉면은 원래 한겨울에 즐기던 별식이었다. 추운 겨울, 살얼음 낀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먹던 평양의 풍경은 이제 전설처럼 전해진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고깃국 대신 사용한 동치미 국물이 평양냉면의 기원이었고, 그래서 얼음이 자연스럽게 어는 겨울철에나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이후 제빙 기술의 발달로 사시사철 얼음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냉면은 여름철에도 즐길 수 있는 국민 음식이 되었다.

 

평양냉면은 오랜 시간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특히 대중적 열풍이 시작된 시기가 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이 옥류관 평양냉면을 공수해 온 이른바 “냉면 회담” 이후로, 남한에 평양냉면 붐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멀다 말하면 안되갔구나”라는 농담과 함께 평양냉면을 권한 장면이 화제가 되며 젊은 세대까지 평양냉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평양냉면이 힙스터들의 음식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실제로 오랜 단골뿐만 아니라 호기심에 찾아온 젊은 손님들까지 한데 어울려 냉면 그릇을 비우는 모습은, 이 한 그릇 음식이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래 겨울철 별미가 이제 여름철 별미로 자리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담백함이 큰 힘을 발휘했다. 더위로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에 강한 양념이나 기름기 대신 깔끔한 국물과 심심한 면발이 오히려 속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땀을 식혀주는 차가운 육수, 부담 없이 넘어가는 메밀면은 여름철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급기야 평양냉면은 한국의 ‘면식(麵食) 문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맛’ 필동면옥

 

식신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인기있는 평양냉면 맛집을 손꼽아 보자면 세손가락안에 드는 맛집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필동면옥’이다. 1985년 문을 연 이래 서울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4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노포. 붉은 석재 간판에 큼직하게 새겨진 ‘필동면옥’ 간판 아래로 매번 직장인들과 단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설 만큼, 필동면옥은 옛 정취와 깊은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슴슴한 국물과 메밀 면발의 조화

 

 

대한민국 평양냉면 계보는 크게 ‘의정부 평양면옥’ 계열과 ‘장충동 평양면옥’ 계열, 우래옥 계열 등으로 나뉜다. 필동면옥은 이 중 의정부 평양면옥 계열의 중심에 놓인 집이다. 이 스타일의 평양냉면은 한눈에 봐도 담백하고 소박한 멋이 있다. 맑은 육수에 회색빛을 띠는 메밀면이 푹 잠겨 있고, 살코기 수육 한 점과 돼지고기 제육 한 점, 반쪽짜리 삶은 달걀, 대파, 그리고 새빨간 고춧가루 약간이 전부다. 겉보기엔 심심해 보여도 한 젓가락씩 먹을수록 은은한 육향과 감칠맛이 배어나와 중독성을 발휘한다. 100% 메밀은 아니지만 메밀 함량을 높인 면발은 너무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로 쫄깃함과 탄력이 살아 있다.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이 은은하고, 입에 넣어 씹으면 힘주지 않아도 툭툭 끊어지는 부드러운 식감이다. 함흥냉면처럼 쫄깃하게 질긴 면과는 대조적인 이 식감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담백한 육수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조화로운 맛을 낸다. 국물 위에 뿌려진 고운 고춧가루는 특별한 양념장 없이도 약간의 칼칼함을 더해주어 끝맛을 개운하게 잡아준다.

 

 

평양냉면의 맛은 혀를 강타하지 않고도 은근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처음엔 “너무 밍밍하다”는 평도 있지만, 평양냉면 애호가들은 “열 번 맛봐야 비로소 평양냉면의 삼삼한 매력을 즐길 수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실제로 필동면옥의 냉면 국물도 먹을수록 약간 짭조름한 감칠맛이 서서히 느껴져, 어느새 그 담백함에 길들여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특별한 양념을 더하지 않고도 재료 본연의 맛만으로 승부하는 담백함, 이것이야말로 평양냉면이 오랜 세월 사랑받는 비결일 것이다. 냉면 한 그릇을 비울 때쯤이면 속이 편안하게 채워지면서도 입안은 개운해, 마치 수행하듯 깔끔한 맛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삼삼한 맛 속에 깊은 풍미를 숨긴 평양냉면의 조화는 현대의 자극적인 미각에 길든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과 같은 묘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제육 한 점, ‘선주후면(先酒後麵)’의 미학

 

냉면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는 냉면과 함께 곁들이는 삶은 고기다. 필동면옥에서는 돼지고기를 푹 삶아 차게 식힌 ‘제육’과 소 아롱사태를 삶아 식힌 ‘수육’이 있는데, 제육쪽이 인기가 많다. 넓적하게 썰린 제육 한 접시는 겉보기엔 투박하지만, 한 입 베어 물면 담백하면서 구수한 살코기와 쫀득한 비계와 껍질이 조화를 이뤄 입에 착 감긴다. 특유의 돼지고기 잡내 없이 담백한 풍미만 남아 있어, 냉면에 곁들이면 고기의 고소함이 메밀면의 담백함과 어우러져 풍성한 맛의 레이어를 만들어낸다.

 

“선주후면(先酒後麵)”, 즉 “먼저 술을 마시고 후에 국수(면)를 먹는다”는 식문화는 이 집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테이블마다 초록빛 소주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의정부 평양면옥을 창업한 평양냉면의 대모인 김경필 할머니도 “맛있게 평양냉면을 즐기는 법으로 소주 한 병은 필수”라고 강조했을 정도. 시원한 냉면 국물과 소주의 쌉쌀함, 여기에 담백한 풍미의 제육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맛의 삼중주는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사다. 냉면과 곁들이는 밑반찬들도 이 집의 담백한 맛 철학에 충실하다. 상에 앉으면 함께 내주는 김치는 고춧가루 양념을 최소화해 심심할 정도로 간이 약하며, 새큼하게 절인 무도 과하게 달지 않고 아삭한 맛을 살렸다. 특히 양념장이 아주 요물인데, 새빨간 빛과 달리 매우 맵지 않고 약간 달짝지근한 소스로, 담백한 제육에 아주 잘 어울린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수육과 제육은 반반 주문도 가능한 것이 단골의 팁이다.

 

 

오래된 맛이 전하는 깊은 울림

 

충무로 필동면옥의 평양냉면 한 그릇에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맑은 육수, 투박한 그릇, 수수한 고명들은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그 속에는 실향민들의 눈물이 되고 한(恨)이 되었던 고향의 맛,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견뎌온 세월의 맛이 녹아 있다. 혀를 자극하는 강렬함 대신 끝없이 회귀하는 담백함으로 승부하는 이 음식은, 마치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온 노포 필동면옥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입맛의 유행 속에서도 40여 년간 한 우물을 판 이 집의 냉면은, 먹는 이로 하여금 문득 '느린 맛의 미학'에 눈뜨게 한다. 평양냉면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 심심한 맛에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새 국물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담백함 뒤에 은근히 깃든 깊은 감칠맛, 슴슴함 속에 숨은 풍부한 풍미, 그리고 속이 편안해지는 개운함까지, 이토록 절제된 맛의 향연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한 번 평양냉면 맛에 익숙해지면 다른 냉면은 못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양냉면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좀처럼 그 마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필동면옥은 바로 그런 평양냉면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세대를 넘어 많은 이들의 최애(最愛) 냉면집으로 자리잡았다.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필동면옥의 문을 밀고 들어서면 시간의 흐름이 잠시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고 지켜나가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공간, 그리고 그런 철학이 빚어낸 한 그릇의 음식. 안병익의 노포기행, 그 여정 속에서 만난 필동면옥의 평양냉면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오늘도 필동면옥은 한결같은 맛으로 손님을 맞이하며,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옛맛의 향기를 선사하고 있다.

 

 

▲ 상호: 필동면옥 
▲ 주소: 서울 중구 서애로 26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월~토 11:00-20:20 (브레이크타임 16:00-17:00)  
▲ 추천메뉴와 가격: 냉면 1만5000원, 제육 3만원, 접시만두 1만5000원 
▲ 식신 ‘김시홍’님의 리뷰: 1차로 돼지갈비 먹고 2차로 해장겸 소주마시로 들렀습니다. 매번 점심에만 방문했는데 저녁에 평양냉면에 소주하시니 진짜 맛있습니다. 특히 쫀득하고 고소한 제육과 소주한잔은 일품입니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은 친구도 정말 맛있다고 하네요

  • 필동면옥

    서울-강북-충무로, 냉면/막국수 > 한국음식
    출처 : 식신 컨텐츠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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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식신 컨텐츠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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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냉면 전문점. 면발의 색이 투명하고, 가늘고 찰진 것이 특징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먹던 방법처럼 냉면에는 고춧가루가 뿌려져 나옵니다. 냉면을 먹기 전에 꼭 먹어줘야 하는 만두와 편육. 평양식 만두는 먹음직스러운 크기에 만두소가 꽉 차있어 육즙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편육은 질 좋은 고기를 잘 삶아서 독특한 새우젓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 것이 일품이랍니다.

    메뉴 정보

    냉면, 만두국, 비빔, 사리, 수육, 온면, 접시만두, 제육

    별 인증 히스토리

    맛집 근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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