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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화 성남 은혜식당

  • 2015.05.08
  • 조회수 3694

기사식당 로드

제 14화


<한정식 부럽지 않은 갈치구이 백반, 성남 은혜식당>



여기 한 덩어리의 찰흙이 있다. 각자 자유롭게 이 네모난 시루떡 모양의 찰흙을 ‘현재보다 더 나은’ 무언가로 만들어보자. 찰흙을 주물러 모양만 내든, 물감이나 유약을 발라 화려하게 색을 내든 모두 당신의 자유다. 당신은 어떤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인가?


진흙 덩어리를 유려한 곡선의 백자로 만들고, 텅 빈 흰 도화지를 색색의 물감으로 채워 넣는 것과 같이,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런 생각은 몇 해전 작은 백반집을 하고 있는 친구 어머니를 잠시 도왔을 때 부터 시작되었다. 그 백반집은 매일 새로운 반찬과 국을 끓여냈는데 나는 그곳을 갈 때마다 바뀌는 반찬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좋았다. 여러 개의 반찬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싹싹 비우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젓가락 하나 대지 않고 남기기도 했다. 어느 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와중에 친구의 어머니가 식재료 손질을 좀 도와달라고 청하셨다.


“돈가스 만드는 것 좀 도와줘라. 일단 주방에 가서 다라이부터 챙겨오고.”


그렇게 시작한 작업(?)은 거의 몇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하나의 메뉴를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큰 고무대야가 필요할 정도의 스케일에 한번 놀랐고, 등심을 하나하나 칼등으로 두드려 펴서 계란 물에 담갔다 빵가루를 입히는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놀랐다. 오랜 시간 쭈그려 앉아 작업을 한 탓에 뻑뻑해진 다리 관절을 펴면서 이 집 반찬을 생각했다. 쥐포 조림, 어묵볶음, 나물들.. 그리고 내가 손대지 않았던 콩자반까지.


도대체 언제 그 많은 반찬을 다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진 나는 그날 이후로 주방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식재료를 조달해주는 트럭이 다녀가면 어머니는 생각할 것도 없이 칼을 잡았다. 한눈에 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네모난 중식칼을 쓰셨는데 리듬을 타듯 재료를 썰었다. 콩나물과 돼지고기, 계란 등등의 익숙한 식재료들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 국으로, 무침으로, 밥으로 매일 옷을 갈아입었다. 어머니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양념과 조리 방법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였다.


반찬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던 그 시절의 기억 이후, 나는 식당에서 ‘푸짐한 밥상’을 내준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던 와중에 오늘 이 식당에서 밥상을 받았을 때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다. 성남에 위치한 은혜로운 식당. ‘은혜식당’을 소개한다.


은혜식당은 성남 모란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다. 사실 이곳은 지난달에 기사식당 로드 취재를 위해 한번 들렀다가, 주차공간이 없는 관계로 발길을 돌렸던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곳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음식’에 있다.






ㅣ소박한 은혜식당의 외관




ㅣ좌식 테이블과 입식 테이블로 구분되어 있다.




ㅣ요리하는 모습이 바로 보인다.




ㅣ은혜식당의 메뉴





갈치구이와 고등어조림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면서 가게를 구경한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뭇거뭇 한 흰 벽은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요즘 식당들처럼 깔끔한 모양새는 아니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게 한편에는 직접 반찬을 떠다 먹을 수 있도록 동그란 뷔페 접시와 셀프 바가 있다. 김치와 어묵볶음, 고추장아찌, 겉절이 등 6가지 종류의 찬(cold) 반찬들이 있다. 잠시 뒤 흔히 오봉이라고 부르는 은색 사각 쟁반에 또 다른 반찬과 함께 메인 메뉴가 나왔다.


반찬이 몇 개 인지 세고 있노라니 곧 팔팔 끓고 있는 계란찜이 나온다. 메인 메뉴인 갈치구이와 고등어를 제외하고 곁들이는 반찬만 14개다. 놀라워 물었더니 사장님도 ‘그렇게 많았나?’며 되묻는다. 계획을 세워서 하기보단 그때그때 식재료에 맞춰서 반찬을 만들다 보니 몇 가지나 되는지는 세어보질 않았단다. 덜어준 반찬은 남기지 않도록 조금씩 담아주셨는데, 개수가 많으니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올까 봐 일단 염려가 된다.


여러 가지의 음식이 있었지만 첫 번째로 눈길이 가는 곳은 단연 갈치 구이다. 눈으로만 봐도 바삭한 느낌이 전해오는 갈치는 1인분임에도 넉넉한 양이다. 생선 살 가운데를 젓가락으로 살살 눌러가며 뼈를 발라낸다. 토실토실한 살점을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으면 탱글탱글하고 고소한 맛이 퍼진다.


집에서 갈치를 구우면 왜 이 맛이 나지 않을까. 은혜식당의 갈치 굽는 방법을 잘 따라해보자.


[은혜식당 표 갈치 굽기]


1) 갈치는 흐르는 물에 핏기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내장 남아있는 것도 모두 제거해야 좋아요)

2) 은색 껍질은 칼등으로 살살 벗겨내주세요. (너무 완벽하게 벗겨낼 필요는 없어요)

3) 굵은소금에 재워 24시간 동안 냉장 보관합니다. (갈치의 수분이 빠지면서 살이 탄탄해져요)

4) 부침가루나 밀가루를 살짝 묻힌 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센 불에 튀기듯 겉을 익히고 바로 중불로 줄여 끝까지 익혀줍니다.





ㅣ갈치구이백반과 고등어조림 (1인분 6천원씩)




ㅣ갈치느님의 자태




ㅣ잘 익은 속살




ㅣ밥 위에 척 올려서 꿀꺽!




ㅣ팔팔 끓던 계란찜은 살살 저어서 후루룩~후루룩~





또 다른 메뉴인 고등어조림은 토실한 고등어가 세 토막 들어있고 양념 맛은 과하지 않다. 이곳은 전반적으로 반찬의 양념이 슴슴한 편. 고등어 살을 골라 한 입. 양념을 밥에 비벼 날 김에 싸서 두 입, 뚝배기 아래쪽에 깔려 있는 양념이 잘 배인 무를 세 입. 한 그릇이 금세 비워진다.


배가 통통하게 불러올 때까지 밥과 반찬을 연신 집어먹다 보면 이곳이 기사식당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보인다. 기사식당으로 출발한 식당은 아니지만, 택시기사 사이에서 알음알음 가게 이름이 알려진 전형적인 케이스다.


가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이곳의 사장님은 원래 대전 출신이었다. 여동생과 함께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을 파는 밥장사를 준비하면서 메뉴 개발에 몰두하던 중, 자신은 성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자매는 각각 성남과 대전에 ‘은혜식당’을 열게 된다. ‘은혜’라는 가게 이름은 여동생이 지었다. 그렇게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식당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사장님 말로는 ‘양념 맛이 좀 다르다’고. 기회가 있다면 두 곳의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ㅣ고등어조림 1인분




ㅣ토실토실한 고등어 속살




ㅣ밥 위에 척 얹어서 냠~!




ㅣ날김에 얹어먹어도 좋아요




ㅣ숭늉으로 입가심 하세요~





식사를 마칠 때쯤 이미 나의 위는 음식으로 꽉꽉 들어차 숨쉬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김이 펄펄 나는 숭늉 대야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올려놓으시며 ‘숭늉 한 그릇’을 권한다. 쪼르르 달려가 한 그릇 퍼담아와서 따끈하고 구수한 숭늉을 후루룩 들이켜니 한정식집 부러울 것이 없는 마무리다.


새벽 5시부터 홀로 가게에 나와 그날 하루의 반찬을 준비한다는 사장님.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며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장님의 어깨에 19년 세월이 올라앉아 있다. 모쪼록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찾아올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든다.


식신의 TIP


•주소: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3342

•메뉴: 갈치구이백반, 고등어조림, 청국장, 김치찌개, 된장찌개, 녹차고등어구이 6천원 / 갈치조림, 제육볶음 7천원

•영업시간: 6:30 ~ 21:00 (명절 제외하고 휴일없이 운영)

•밥 추가: 기사님 무료, 일반 손님 천원

•자판기 커피: 요청시 믹스커피 제공, 보통 숭늉 제공

•주차공간: 가게 앞 2대









매장 바로가기

  • 은혜식당
    • 경기, 성남/모란/복정/청계산
    • 6489 714
    • 평점

      3.3

    • 인기 메뉴
      • 갈치구이백반
      • 갈치조림
    • 소개

      갈치구이, 갈치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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