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FAQ
Q. 백화양곱창은 언제부터 시작된 곳인가요?
A. 1959년, 남포동 시장통에서 출발해 6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양곱창을 구워온 부산 양곱창의 원조다
Q. ‘곱창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하나의 간판 아래 1호~12호까지 여러 독립 점포가 공존하며, 각기 다른 손맛으로 양곱창을 굽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Q. 처음 방문하면 어떻게 자리를 안내받나요?
A. 입구에서 “단골집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없다면 무작위 배정, 있다면 해당 호점으로 안내된다
식신 천공기법사님의 리뷰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식당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곱창 굽는 연기가 자욱한 곳. 1959년부터 자갈치 시장의 한켠을 지켜온 ‘백화양곱창’의 풍경이다. 이곳은 단일 식당이라기보다 하나의 ‘곱창 공화국’에 가깝다. 거대한 가옥 같은 실내 공간 안에 십여개의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저마다의 화력을 뽐내는데, 그 사이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이곳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진하다. 처음 마주하는 이들에겐 눈이 매울 법한 풍경이지만, 이내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석쇠 위에서 들려오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매료되고 만다. 세련된 인테리어도, 쾌적한 환기 시스템도 없지만, 수 십년 넘는 세월 동안 부산 사람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투박한 '노포의 정석'이 바로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1959년 문 연 부산 양곱창의 원조
‘백화양곱창’은 부산 자갈치시장 인근 골목에서 50년이 훌쩍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노포다. 그 시작은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의 주류회사였던 백화양조(현 롯데주류)의 후원으로 남포동 시장통 한 켠에 작은 곱창구이 가게를 연 것이 백화양곱창의 출발이었다. ‘백화’라는 간판 이름도 후원사였던 양조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알려져 있다. 6·25 전후 먹을 것 부족하던 시절, 소고기 대신 버려지던 내장 부위를 숯불에 구워 먹기 시작한 것이 부산 곱창구이 문화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후 세월과 함께 가게는 여러 차례 증·개축을 거치며 규모를 키웠고, 지금은 부산을 대표하는 양곱창 골목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백화양곱창 1호점은 창업주 고(故) 김초달 할머니의 뒤를 이어 3대째 후손이 가업을 잇고 있을 만큼, 한 가족의 손맛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식신 천공기법사님의 리뷰
이집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여러 독립 점포가 하나의 간판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겉에서 보면 ‘백화양곱창’ 하나의 음식점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 내부에 크고 작은 곱창구이 좌판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독특한 구조다. 실제로 이곳엔 1호부터 12호까지 번호를 매긴 점포들이 코너마다 자리를 잡고 있는데, 각 구역마다 주인이 따로 있어 각기 개성 있는 손맛을 뽐낸다. 일종의 실내 포장마차 골목이나 회 센터처럼, 한 지붕 아래 여러 가게가 ‘샵인샵’ 형태로 운영되는 셈이다. 때문에 입구엔 ‘안내’ 명찰을 달고 있는 직원이 있다. “단골집 있으세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랜덤하게 배정해준다. 각 호점마다 비법 양념장 레시피도 달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고 하니, 단골 손님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나만의 백화양곱창”을 골라 찾는 즐거움도 있다. 이런 독특한 운영 구조 덕분에 백화양곱창 골목에는 경쟁 속의 화목함이 살아 있고, 하나의 간판 아래 여러 가족이 함께 터전을 꾸려온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