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FAQ
Q. 성심당은 언제부터 시작된 빵집인가요?
A. 1956년, 함경남도 출신 피난민이었던 임길순·한순덕 부부가 대전역 앞에서 찐빵을 팔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대전에 정착한 피난민의 삶에서 출발한 제과점이다
Q. 왜 ‘대전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성심당이 꼽히나요?
A. 맛뿐 아니라 나눔·가격·지역 상생이라는 가치가 70년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전 시민에게 성심당은 빵집을 넘어 ‘도시의 상징’이다
Q. 지금도 성심당은 같은 철학을 유지하고 있나요?
A. 그렇다. 합리적인 가격 정책과 매월 수천만 원 규모의 빵 기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식신 쪼끄레기님의 리뷰
식신은 여러 플랫폼과 SNS 채널에 맛집 콘텐츠를 정기 연재하고 있다. 으레 지역의 대표 맛집들을 소개할 때면 긍정적인 반응도 많지만, ‘여기가 왜 대표 맛집인지 모르겠다.’, ‘이젠 초심을 잃고 맛도 없다’ 등의 반응들도 흔하게 달린다. 그런데 대전에서는 조금 다른 흥미로운 반응이 나온다. 대전을 대표하는 곳으로 성심당을 꼽아도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외려 빠지게 되면 난리(?)가 난다. 성심당은 어떻게 대전을 넘어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빵 한 조각으로 사람의 마음까지 훔쳤을까. 그 이유는 성심당의 역사에 있다.
전쟁의 참화에서 피어난 나눔의 철학
식신 537622님의 리뷰
성심당을 만든 임길순·한순덕 부부는 원래 함경남도 함주 출신으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다뤘던 흥남부두 철수작전으로 북녁을 떠나 한국으로 정착한 피난민이다. 1956년 가족과 함께 정착한 대전의 한 성당에서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대전역 앞에서 찐빵 장사를 시작한 것이 성심당의 시작이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던 부부는 빵을 굽는 일로 새 희망을 만들었다. 남은 빵은 이웃에게 나누어 주며 신앙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했고, 이러한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성심당은 개업 초부터 지역 공동체에 깊이 스며들었다. 1970년대에는 은행동 현재 자리로 가게를 옮겨 본격적인 제과점으로 자리 잡았고, 1980년대에 아들 임영진 대표가 가게를 이어받으며 새로운 도약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부터 이어져왔던 나눔의 정신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가벼운 주머니사정으로도 빵을 살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빵을 선보이고, 매월 수천만원 상당의 빵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해오고 있다.
역사가 긴 만큼 늘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겨울, 창업 50주년을 앞두고 대형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전소되는 사고를 겪었다. 오랜 역사의 빵집이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직원들은 ‘잿더미 속의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뼈가 시리도록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맨손으로 그을음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중고 오븐을 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이 모인 끝에, 놀랍게도 화재 발생 6일 만에 다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전 시민들 역시 발 벗고 나서 자원봉사를 자처하며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심당’과 ‘대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가 되었고, 성심당의 나눔 철학을 더욱 공고히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식신 소리솔바람님의 리뷰
이렇듯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꾸려가는 성심당은 그 진심이 닿은 손님들의 긴 대기 줄로 늘 북적인다. 여행 가방을 든 관광객부터 근처 직장인, 동네 주민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모인다. 내부에선 진열대를 둘러싸고 빵을 고르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지만, 오랜 경험을 쌓은 직원들의 능숙한 응대로 줄은 금세 소화된다. 계산대 앞에서는 손님들이 트레이 가득 담은 빵을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린다. 대전을 ‘빵의 도시’로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