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120년 역사를 담은 국물
견지동 ‘이문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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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국로 골목에 스며든 120년 국밥 내음

ggg0n 님 인스타그램

 

 

종로 한복판 인사동 뒷골목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진한 국물 내음이 길손을 붙든다. 회색 도시의 빌딩 숲 사이, 허름한 간판에 적힌 ‘설농탕’ 세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간판부터 독특하다. 대부분 ‘설렁탕’이라 쓰는 시대에 이 집은 옛 이름표 그대로 ‘설농탕’을 내걸었다. 1904년 처음 문을 열어 4대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현존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식당이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한 세기를 훌쩍 넘긴 국밥 솥의 김은 지금도 이 골목을 뜨겁게 지키고 있다.

 

‘장군의 아들’도 단골이던 설렁탕집

피맛골 이문고개 근처에서 처음 ‘이문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한 이문설농탕은 120년 세월을 이어오며 숱한 이야기를 쌓았다. 초기 창업자인 홍씨 이후 1960년대 유원석 여사가 가게를 이어받고, 이후 아들인 전성근 대표가 뒤를 잇고 있다. 이문설농탕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 서울의 산업화까지, 역사의 굴곡마다 허기진 사람들에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래주었던 곳이다. 그중엔 당대를 풍미했던 유명 인물들도 많다. 영화 ‘장군의 아들’로도 잘 알려진 김두한(전 국회의원), 이시영 초대 부통령,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 등이 모두 이곳 설렁탕의 단골로 이름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때 재개발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뜻하지 않은 화재로 잠시 문을 닫기도 했지만, ‘이문설렁탕’은 긴 세월만큼이나 깊은 뿌리로 서울의 맛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심심한 국물에 담긴 깊은 내공

byulbii 님 인스타그램

 

이 집의 설렁탕은 뽀얀 우윳빛 국물이 특징이다.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 소 뼈와 살코기를 넣고 16~17시간 푹 고아내는 동안 위에 뜨는 기름기를 말끔히 걷어내 맑고도 진한 국물을 얻는다. 양지머리와 소머리 고기, 그리고 다른 집에서는 보기 힘든 소의 지라 같은 특수부위까지 아낌없이 넣어 우린 국물이라 감칠맛의 깊이가 남다르다. 그런데 막상 상에 나온 설렁탕 국물을 한 술 떠보면 맛이 꽤 담백하고 심심하게 느껴진다. 비법은 ‘안 넣는 것’에 있다. 현재 이문설렁탕을 지키는 4대째 주인 전성근 대표는 “어머니 때부터 조미료는 일절 쓰지 않았고, 그래서 심심한 맛이 오히려 이 집의 전통”이라는 철학을 고수한다. 자극적인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엔 밍밍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진짜 고수들은 이 맑은 국물에서 오래 우려낸 고깃맛의 내공을 알아챈다. 테이블마다 놓인 굵은 소금과 후추 약간으로 간을 맞추고, 함께 준비된 잘게 썬 파 한 움큼을 듬뿍 띄워 한 술 떠먹으면 비로소 이 국물의 참맛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득한 풍미가 혀끝에 감돌면서도 끝맛은 개운하게 떨어지는 국물은 속을 편안하게 덥혀준다. 뜨끈한 국물을 삼킬 때마다 절로 “아, 좋다” 하는 탄성이 나오니, 한 세기 넘게 사랑받은 이유를 입으로 깨닫게 된다.

 

양지부터 지라까지, 푸짐하게 깔린 고기

ggg0n 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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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설렁탕은 전통 토렴 방식을 고수한다. 밥을 미리 말아 몇 차례 국물을 부어내는 과정을 거치기에, 손님 앞에 나올 땐 밥과 가느다란 소면까지 국물에 말아져 나온다. 맑은 국물 속에 감춰져 있던 내용물을 숟가락으로 슬쩍 헤집어 보면 푹 삶아낸 밥알과 함께 각종 고기 건더기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담백한 양지머리 살코기부터 쫄깃한 소머릿고기, 고소한 내장의 풍미가 배어난 마나(소의 지라, 비장) 조각까지, 여러 부위가 들어있어 재미있다. 특별히 간을 하지 않고 끓여낸 국물이라 그런지 잡내는 전혀 없고, 다양한 부위에서 우러난 깊은 육향만 은은하게 퍼질 뿐이다. 고기의 양도 넉넉한 편. 그런데 이곳 단골들은 애초에 설렁탕을 주문할 때 ‘특’을 달라고 한다. 몇 천 원 차이지만 고기 양이 훨씬 푸짐하게 나오니 고기 좋아하는 이들은 특으로 먹는 편이 이득이다. 함께 나오는 반찬 또한 설렁탕의 맛을 은은히 받쳐준다. 잘 익어 아삭한 배추김치는 짭쪼름하지만 젓갈 맛이 강하지 않아 국물맛을 해치지 않고, 새콤달콤 시원한 깍두기는 국밥의 훌륭한 친구가 되어준다. 어느새 국물에 말린 밥알까지 싹싹 모두 비워내고 나면, 온몸에 든든한 온기가 퍼진다.

 

소주를 부르는 별미, 야들야들 수육

ggg0n 님 인스타그램

 

hi.gunny 님 인스타그램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고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 집의 수육을 꼭 맛보아야 한다. 각 부위별로 가장 알맞게 익혀낸 머릿고기와 양지, 혀밑(우설), 마나(비장) 등 여러 부위를 한데 모아 한 번 더 따뜻하게 데워 내오는 수육 한 접시는 고기 본연의 담백함이 살아있는 별미다. 주문과 동시에 전골냄비에 배추잎과 대파를 깔고 각 부위별로 고기들을 수북이 담아내는데, 특별한 양념이나 꾸밈없이 투박하게 썰어낸 고기들이지만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면 특유의 고기맛에 감탄하게 된다. 함께 제공되는 간장소스를 살짝 찍어먹으면 감칠맛이 더욱 올라간다. 여기서 단골의 팁이 있는데, 메뉴엔 수육 또는 도가니로 각각 구분되어 있지만, 따로 요청하면 ‘반반’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풍미 좋은 도가니와 쫄깃한 도가니를 함께 즐기고 싶다면 ‘반반 수육’을 부탁해보자. 두툼한 수육 한 점에 막걸리나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이곳엔 점심시간이 한창 지난 오후에도 빈자리가 거의 없을 만큼 수육에 술 한잔 기울이는 단골 손님들이 많다. 100년 넘게 변함없는 맛을 지켜온 노포의 푸근한 온기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잠시 근심을 내려놓고 느긋한 한때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 세기를 끓여온 한결같은 위로

shi_luv_korea 님의 인스타그램

 

이문설렁탕의 한결같은 맛은 화려하게 튀지 않는다. 1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나온 시대만큼이나 수많은 유행과 변화가 있었지만, 이 집 국밥이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은 언제나 담담하고 조용하다. 오래된 가마솥 속 뽀얀 국물처럼, 투박하지만 정직한 손맛을 그대로 지켜온 것이다. “좋은 재료로 대중음식점에 걸맞은 단순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는 현재 주인의 신념처럼, 이곳은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며 전통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 결과 진한 사골 국물에 담긴 옛날식 설렁탕 한 그릇은 시대를 초월한 위로의 맛이 되었다. 아침 일찍 국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동네 어르신부터 점심 때 뜨끈한 한 끼를 찾는 직장인들, 한국의 오래된 맛을 찾아오는 외국 관광객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이곳의 맑은 국밥에서 편안함을 얻는다. 투박한 그릇에 담긴 설렁탕을 마주하고 있으면, 분주한 도심 속에서도 잠시 100여 년 전의 옛 서울을 마주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밥 그릇 너머로, 수십 년 세월을 지켜온 주인의 뚝심과 부지런함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그렇게 오늘도 커다란 솥 안에서는 어제와 다름없는 국물이 조용히 끓어오르고, 그 국물에 지난 한 세기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손님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준다. 변덕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한 그릇의 위로가 있기에, 이문설렁탕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 상호: 이문설렁탕 (이문설농탕)    
▲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38-13 (견지동 88)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월~토 08:00-21:00, 일요일 08:00-20:00 (브레이크타임 매일 15:00~16:30)    
▲ 추천메뉴와 가격: 설농탕(보통) 14,000원, (특)설농탕 17,000원, 수육 44,000원    
▲ 식신 ‘마포면먹러’님의 리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중 하나인 이문설농탕. 국물 내는데 뼈를 많이 사용하는지 국물이 뽀얗고 고기 맛이 약했다. 고기의 양은 적당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곰탕, 설렁탕집에서 가장 중요한 깍두기와 김치는 달지 않아 좋았다. 특으로 시키면 고기가 훨씬 더 많이 나오니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 바란다.

  • 이문설렁탕

    서울-강북-인사동, 설렁탕/곰탕/갈비탕 > 한국음식
    출처 : 이문설농탕 인스타그램 검색 결과
    출처 : 이문설렁탕 공식 점주 제공
    출처 : 이문설렁탕 공식 점주 제공
    출처 : 이문설렁탕 공식 점주 제공
    출처 : 이문설렁탕 공식 점주 제공
    100년 전통의 '이문설농탕'. 종로의 역사를 함께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대표 메뉴는 토렴된 밥과 소면이 담겨 나오는 형식의 '설렁탕'.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의 중간쯤 되는 설렁탕은 슴슴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고기 국물임에도 불구하고 기름기가 덜해 담백한 것이 특징이며, 기본 간이 되어있지 않아 개인의 취향에 맞춰 소금, 후추, 대파 등을 첨가해 먹을 수 있습니다. '특설렁탕'을 주문 시 비장이나 소 혀, 머릿고기 등 소의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설렁탕과 김치 모두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맛이 이 곳의 특징입니다.

    메뉴 정보

    도가니안주, 도가니탕, 도가니탕 (특), 마나, 머리탕, 머리탕 (특), 설농탕, 설농탕 (특), 소머리안주, 수육, 수육무침, 혀밑

    별 인증 히스토리

    맛집 근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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