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1
ㅡ 오세영 ㅡ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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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공존할 때
인연이라는 그물안에서
같이 머물수 있음을...
마음이 맞을 때에는
상대가 무엇을 하든
다 허용이 되지만
그것이 무너졌을 때에는
사랑의 원은 부숴지고
모서리는 각이 서게된다
각이 선 다음부터는
모나고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있어
상대를 향한 과거의
사랑과 열정은 파괴되고
잔해만 황폐해진 곳에는
오직 고통과 증오만 남게 된다
그릇또한 사랑과 같다
한 때 그릇은 가진 자의 상징이었기도하고,
배고픈자의 허기나
목마름을 해결해줄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평화로운 도구였으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누구를 베는 흉기로
돌변하고 만다
베는 상대가 스스로이든
타인이든 가리지않고...
둘만이 묵언으로 약속한
률이 깨어질 때
그 사랑은
날이 선 부메랑이 되어
우리 가슴으로 되돌아와서
날카롭게 꽂히게 마련이다.
깨어지는 건
언제나 칼이 되는 법이다.
사랑할 때의
애틋하고 다정하던 마음도
한 쪽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갈라서게되면
그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예리한 칼날이 되어
무장해제된 나의 정신을
가차없이 베어버리고
외부로 향하던
최후의 간절함마저 베어버린다
벤 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세상의 약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내면으로 깊이 부식되어
순식간에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상처입는 게 두렵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폐인이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그 기쁨이 먼 곳으로 돌고돌아
상대를 먹빛 바다같은
절망속으로 빠지게 함을
알지 못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