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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신 기사식당 로드
제 20화 성북동돼지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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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 로드

제 20화

<48년의 역사를 담은 돼지불백, 성북동돼지갈비>


회사가 위치해 있는 서울 강남의 거리를 걷다 보면 깜짝 놀라는 일이 잦다. 어제까지만 해도 ‘A’의 간판을 달고 있던 가게가 주말이 지나고 나면 ‘B’로 바뀐다. 분식점, 호프, 국숫집, 디저트 가게까지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간판과 새로운 얼굴들이 나도 모르는 새 들어서 있다.


불경기가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앞치마를 매고 몇 년(단 몇 개월이라도)을 버티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솔직히 마음이 좀 서글프다. 분명 새 간판을 달고 힘차게 시작할 때의 주인장의 마음속에는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맛과 향, 추구하는 가치와 꿈이 분명히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 단골도 하나둘씩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걸러 새로운 가게가 태어나는 이 전쟁터에서 이기지 못한 식당은 곧 문을 닫는다. (가끔 먼 길을 돌고 돌아 찾아간 내 기억 속의 가게가 없어졌을 때 느꼈던 그 허망한 감정은 누구에게 이를 길이 없다.)


그런 점에서 노포는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낸 것만으로도 존경할 만 하다. 식당 주인뿐만 아니라 직원, 손님이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박찬일 요리사가 쓴 ‘백년식당’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노포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짚어냈다.


첫째, 음식이 맛있다. 맛이 없으면 오래 버티질 못한다.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한다. 오래된 식당 어디에 가도 주인이 새벽부터 불을 지피고 국솥을 올리고 테이블을 정갈하게 준비해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셋째, 노포의 직원들도 오랜 세월 그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오늘 기사식당 로드에서 방문한 식당도 위의 원칙을 잘 지켜내고 있는 집이다. 48년째 성북동을 지켜오고 있는 ‘성북동 돼지갈비’다. 이곳은 지난 기사식당로드 2화에서 다뤘던 쌍다리 돼지불백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두 집 모두 인기가 많은 관계로 밥때가 되면 밀려오는 택시들과 일반 손님들로 일대가 정신이 없을 정도다. 지난 번에 이곳을 올라올 때는 초록색 마을버스를 타고 왔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촉박해 택시를 잡아탔더니 기사님이 얼씨구나 한다. 마침 이곳에서 식사를 할 요량이었다고 한다. 나름 10년 단골임을 자랑하셨는데, 이곳에서는 이정도 단골은 수두룩 빽빽(?)하다는 농을 던진다.


기사님과 함께 삐뚤빼뚤하게 글씨가 써진 귀여운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외관은 정겨운 할머니 집을 연상케 하는 소박한 모양새였는데 내부는 상당히 독특하다. 추억의 동그란 딱지가 벽에 한가득 붙어있다. 신기한 광경에 잠시 넋을 놓고 구경을 한다. 이 유별난 인테리어의 주인공은 바로 사장님. 오래된 딱지나 돈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군데군데 비어있는 딱지 구멍은 나이 어린 손님들이 하나씩 떼간 자국이다. (소중한 수집품인데 떼가도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니 어쩔 수 없지요.하고 허허 웃는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장님은, 은퇴한 부모님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



ㅣ귀여운 간판의 소박한 외관. 간판만 봐도 고기 냄새가 느껴진다.


ㅣ좌식과 입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ㅣ심플한 메뉴


ㅣ벽에 붙어있는 추억의 딱지들.

ㅣ벽마다 빼곡하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여사장님이 기사님의 얼굴을 보곤 대뜸 주방에 ‘갈비백반’을 외친다. 자주 방문하는 기사님이 즐겨 찾는 메뉴나 좋아하는 밑반찬 같은 건 외우고 계시단다. 기사식당에 들어와 앉아 “늘 먹던 걸로”하고 주문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곳의 메뉴는 간단하다. 얇게 썬 돼지고기를 연탄에 구워내 고기의 터프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불고기백반과, 여기에 갈비뼈가 붙은 고기 한 토막이 더 올라간 갈비백반, 그리고 떡갈비, 냉면이다.


다른 불백집과의 차이점은 돼지고기를 떼어오지 않고 통째로 사 온다는 점이다. 머리와 삼겹살 부위만 빼고 나머지 부위는 다 있다. 이 고기는 매장 뒤쪽에 있는 육절기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정육한 후 사용하는데 삼일에 2마리 정도씩 소비한다고. 잘게 썬 고기는 30년 넘게 함께 일해온 주방장의 손으로 넘어가는데, 간장을 중심으로 슴슴하게 양념을 한 후에 냉장고에서 딱 24시간을 숙성시킨다. 그리곤 매일 새벽 6시부터 재워둔 고기를 초벌 한다. 가게를 오픈하는 오전 8시 30분. 가게 앞은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늘어선 택시 기사님의 방문이 이어진다.


남자 손바닥만 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고기는 척 보면 그 양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밥과 쌈 채소와 함께 먹는 한 끼 식사로 치면 딱 적당하다. 한 점 집어 들어 맛보면 연탄구이 특유의 내음이 먼저 훅 끼치고, 씹으면 씹을수록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난다.


간단한 메뉴 구성에도 이곳이 오랜시간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고기와 함께 곁들이면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반찬 덕이다. 작은 사이즈의 알마늘을 고추장 양념에 숙성해 내놓는 반찬은 자칫 고기 맛에 질릴 수 있을법한 타이밍마다 톡 쏘는 맛으로 입안을 환기시켜 준다.




ㅣ갈비백반(7,500원)의 고기느님


ㅣ갈비뼈가 붙은 고기가 한 점 들어있다. 요게 오백원~



ㅣ잘 구워진 고기


ㅣ알마늘과 함께 싸먹으면 더 좋다.


ㅣ밥도둑



돼지고기를 다져 만든 떡갈비도 있다. 도톰한 떡갈비가 열 점 내외로 들어있는데 불고기와 마찬가지로 짜지 않고 적당한 간이긴 하나 기름기가 좀 있는 편.


메인 메뉴에 정신이 팔려 한참을 먹다가 밑반찬을 살폈더니, 독특한 반찬이 하나 눈에 띈다. 바로 조개젓이다. 불고기 집에 웬 조개젓인가 싶다가도, 보쌈에 딸려 나오는 새우젓이나 제주 흑돼지에 찍어먹곤 하는 멜젓(멸치젓)을 생각하면서 발란스를 맞춘 것인가 싶다.


조개젓은 가게를 시작할 때부터 반찬으로 쭉 내오던 것으로 기존에는 젓갈도 직접 담갔다. 그러다가 2000년 초 즈음부터 점차 손님이 많아지면서 메인 메뉴만 준비하기에도 벅찬 탓에 사서 쓰기로 했단다. 그리곤 손님 상에 올릴 만한 맛있는 조개젓을 찾아 전국을 유랑했다고 한다. 결국 찾은 곳은 젓갈로 유명한 도시인 충남 강경. 한 집에서만 벌써 15년째 조개젓을 받아쓰고 있다.


젓갈은 짭조름한 맛과 함께 조개 특유의 개운한 풍미가 나는데, 밥과 함께 씹으니 구수한 맛이 감돈다. 밥에 찬물을 말아 조개젓만 반찬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종지에 담겨있지만 그 존재감은 소호정의 깻잎찜이나 강릉 어느 막국수집의 명태식해 못지않다.


주인부부는 3년 전 지금의 아들내외에게 이 가게를 물려주었는데 아직도 수시로 내려와 고기와 밑반찬의 상태를 점검하신다고. (사정상 다른 이에게 잠깐 가게를 맡겼던 때가 있었는데, 이때도 주인부부의 지적질(?)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이 까다로움 탓에 아들내외는 지점이나 분점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고.


ㅣ떡갈비(7,000원)


ㅣ도톰한 떡갈비는 잘 부서지지 않고 탱글하게 뭉쳐있다.


ㅣ알마늘과 쌈장을 올려 냠냠


ㅣ쟁반에 담겨 나오는 반찬


ㅣ한 상 차림


ㅣ구수한 조개젓도 별미


간판에 붙어있는 ‘45년 전통’에 대해 주인 내외는 “5년마다 한 번씩 바꾸는데, 3년 전에 바꿨으니 내후년에 또다시 바꾸겠네요”하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일반 식당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인 “5년”이 이미 반백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식당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이제 이 가게가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옛날 맛”이다. 어느 손님이 언제 방문하든 그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그 맛을 앞으로도 꾸준히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사장님은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에필로그]

몇 달간 서울과 근교의 기사식당을 찾아다녔다. 도톰한 외투를 입고 호기롭게 출발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카메라 가방끈과 작은 수첩에는 땀이 배어들었다. 이제는 택시를 타면 자동으로 ‘오늘 점심은 어디서 드셨는지?’하는 질문이 나오는데, 응원 댓글을 남기겠다며 따뜻한 격려를 해주셨던 분당의 택시기사님도 기억에 남고, 식당 인터뷰를 하려다가 광고쟁이로 오해를 받아 쫓겨난 경험을 떠올려도 이제는 웃을 수 있다!!


여러 기사식당을 취재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몇몇 식당의 기록은 아직 내 컴퓨터 속에 잠들어있는데 이곳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식당은 나의 블로그에 틈틈이 올리도록 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제주나 남해 끝자락의 기사식당도 한 번쯤은 꼭 방문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기사식당이라고 하면 저렴한 음식값의 이미지 때문에 대부분 박리다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점점 높아지는 월세와 오르는 물가 탓에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취재를 준비하는 도중에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그 음식 맛을 보지 못한 기사식당이 왕왕 있어 매우 아쉬운 마음이다. 이에 기사식당 로드의 마지막 편은 이 집을 올리기로 처음부터 점 찍어두었었다. 우직하게 어려운 장사를 하고 계신 모든 기사식당들이 이곳처럼 ‘수십 년의 세월도 이겨낼 수 있는 식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 동안 부족한 스토리를 구독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식신의 TIP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14-2

•메뉴: 불고기백반, 떡갈비, 반반 모두 7,000원 / 갈비백반 7,500원 / 아버지냉면 6,000원 / 불백아버지냉면세트 11,000원

•영업시간: 08:30 ~ 21:00 (첫째, 셋째주 일요일 휴무)

•밥 추가: 기사님 무료

•자판기 커피: 무료

•주차공간: 45대





  • 성북동돼지갈비 본점

    서울-강북-성북동, 돼지갈비 > 한국음식
    출처 : 식신 컨텐츠팀 제공
    출처 : sunny0young님 인스타그램
    출처 : sunny0young님 인스타그램
    출처 : ljieun81님 인스타그램
    출처 : jihuicheon님 인스타그램
    오랜 시간동안 성북동을 지켜오고 있는 ‘성북동 돼지갈비’는 밥때가 되면 밀려오는 택시들과 일반 손님들로 일대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얇게 썬 돼지고기를 연탄에 구워내 고기의 터프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불고기백반'과 갈비뼈가 붙은 고기 한 토막이 더 올라간 '갈비백반'이 인기 메뉴입니다. 간장을 중심으로 슴슴하게 양념을 한 후에 냉장고에서 딱 24시간을 숙성시킨 후 매일 새벽 6시부터 재워둔 고기를 초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메뉴 정보

    돼지불고기백반, 떡갈비백반, 반반백반(불고기+떡갈비), 돼지갈비백반, 아버지냉면, 돼지불백 특, 쭈꾸미정식, 우렁된장찌개, 1인 불고기+냉면, 1인 불백+우렁된장, 2인 불백2+우렁된장1, 2인 불백2+냉면1, 3인 불백3+우렁된장1, 3인 북백2+쭈꾸미1+우렁된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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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집 근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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