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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화 복가네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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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5월이다. 매해 이맘때쯤 새로운 잎을 틔워내는 꽃나무처럼, 사랑의 결실을 맺은 지인들의 결혼 소식도 속속 들려오기 시작한다. 행사가 많은 달 답게 이곳저곳 지출이 많아 비록 지갑은 가벼워질지언정, 주말 낮 곱게 옷을 차려입고 식장으로 나설 때면 ‘맛있는 밥’을 먹을 생각에 매번 설렌다.


요즘 결혼식장을 방문하면 열에 아홉은 뷔페식이지만, 옛날 결혼식 식사 장소에 가면 잔치국수를 먹었다.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께서 동그랗게 말은 소면 뭉치 위에 노란 계란 지단과 애호박 고명을 척 얹어, 뜨끈한 멸치육수를 한가득 부어 나눠주면 손님들은 국수 그릇을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아 먹었다. 식사에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 그릇으로는 양이 다소 부족해서 국수 받아 가는 곳에 또다시 줄을 서곤 했다. “아주머니 양 많이요~”는 나의 단골멘트였다.


이 국수는 결혼식장 뿐만 아니라, 대학교 근처 스낵카에서.. 때로는 새벽녘 포장마차에서 나의 허기를 달래주곤 했다. 두 손으로 그릇째 움켜쥐고, 그 뜨끈하고 짭조름한 국물을 한 모금 후루룩 마시면, 속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마냥 행복해지곤 했다.


멸치와 다시마, 무 등으로 국물을 내는 멸치국수는 그 재료의 가짓수만 봐도 참으로 소박한 음식이지만 만드는 사람과 재료, 방법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가끔 포장마차에서 멸치국수를 먹을 때 물맛이 혀끝에서 겉도는 뜬맛이 나 아쉬웠던 기억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방문했던 국숫집에서 제대로 멸치를 우려낸 깊은 맛의 국물에 무릎을 탁 친 적도 있다. 오늘의 기사식당도 국물로는 아주 추천할만하다. 공릉동 국수거리에 위치한 ‘복가네 소문난 멸치국수’다.


공릉동 골목에 국수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건 불과 3년 남짓인데, 이 골목의 국숫집들은 1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곳이 종종 있다.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는 아니고 긴 골목에 띄엄띄엄 펼쳐져 있는 편이다. 이 골목에서 국수를 처음 만들어 판 곳은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공릉동 원조 멸치국수’.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오늘 소개할 ‘복가네 소문난 멸치국수’가 자리를 잡았다. 그때가 1997년이었으니 약 19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l 골목 초입에 서있는 국수거리 조형물


ㅣ복가네 소문난 멸치국수의 외관


ㅣ손님들로 북적이는 내부


ㅣ오픈된 주방 사이로 쌓여있는 소면의 모습이 보인다.


ㅣ메뉴판


ㅣ수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도 소중히 기록했다.


이곳은 기사식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인근에 위치한 택시회사 차고지에서 방문하는 기사님들을 모객하며 자리를 잡아온 식당이다. 골목 자체가 유명해진 데에 택시기사님의 입소문도 큰 역할을 했다. 이에 아침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긴 시간을 운영하며 기사님을 배려하고 있기도 하다. 오전과 새벽녘엔 택시회사 조끼를 입고 홀로 방문하시는 손님도 종종 볼 수 있다고. (실제로 공릉동 국수거리에는 닭곰탕, 제육 등 기사식당에서 자주 보는 메뉴들을 판매하는 다른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국수와 함께 백반도 같이 팔았지만, 손님이 많아지면서 운영이 어려워 국수 메뉴만 판매하는 것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지금은 멸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수제비, 김밥의 5가지 메뉴만 판매한다.


국수거리는 명성에 비해 한적한 편이었지만, 이곳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북적북적했다. 가장 한적할 만한 낮 3시 즈음에 방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리 남은 테이블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식사시간에 오면 기다리는 수고를 할 수도 있겠지만 좌석 회전율이 빨라 오래는 아닐 것 이다.


멸치국수와 비빔국수, 김밥 하나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메뉴가 만들어지는 대로 번개같이 서빙된다. 가장 먼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멸치 국수가 나온다. 굵게 채 썰어 간장에 절인 파와 김을 넉넉하게 얹어 나오는 국수는 젓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 한 수저 떠서 그 맛을 본다. “이야~! 제대로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ㅣ멸치국수(3,500)


ㅣ멸치국수와 새콤한 김치, 김밥 한 상


ㅣ소박한 모양새지만 묵직한 국물


ㅣ김치를 얹어 한입에 호로록!


ㅣ기름 바르고 깨를 솔솔 뿌린 옛날냄새 나는 김밥(2,000원)


ㅣ소박한 내용물이지만 국수와 조화가 좋다.


국물 맛은 짭조름하고 깊은 맛이 감돌면서 끝 맛이 개운한 것이 특징이다. 면을 크게 떠서 후루룩하고 삼키면 아삭한 파가 딸려 올라와 식감을 살려준다. 단출한 밑반찬인 김치도 상큼한 것이 꽤 맛있는 편. 국수의 면은 제시간대로 잘 삶아져서 탱글탱글한데 금세 불어버리니 빠른 속도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국수의 양이 제법 많은 편인데, 하루에 판매하는 국수 양이 많은 만큼 멸치 손질작업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고, 육수를 우리는 작업은 평일 기준 큰 드럼통으로 7번~8번 정도 우려낸다고 한다. (국수양은 많지만 중간중간 김치와 함께 김밥을 곁들여 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이 보인다;;)


막 삶아내 뜨끈한 멸치국수와 달리, 김밥은 약간 차가운 상태로 썰어져 나오는데 나는 차가운 김밥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한 입에 넣고 씹으면 김밥의 재료들이 입안에서 알알이 흩어졌다가 씹으면 씹을수록 하나로 모아지면서 내는 하모니가 좋다. 거기에 멸치 육수를 한 모금 마시면 금상첨화다. 김밥의 재료는 소박한 편으로 김밥만 먹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국수와의 조화가 좋은 편.


또 다른 메뉴인 비빔국수도 별미다. 김치와 단무지, 오이를 잘게 채 썰어 이 집에서 만든 양념장에 조물조물 비벼서 내온다. 통깨를 살살 뿌려 장식을 해 내오는데 예전에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비빔국수가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면과 양념은 미리 함께 버무려져 나오니 먹기도 편하다. 흔히 맛보던 양념장이 아닌, 집에서 직접 만든 테가 나는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다.



ㅣ비빔국수(4,000원)


ㅣ비빔국수와 김밥


ㅣ매콤한 비빔국수


ㅣ돌돌 말아서 한입에!


ㅣ김밥과 함께 드세요


중학생 때부터 가게 일을 도왔다는 아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가게를 확장했을 때를 꼽았다. 인적이 드물었던 공릉동 골목에 위치한 이 작은 국수 가게는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꾸려나가고 있는데, 현재 평수의 반 만한 가게에서 장사를 하다 옆 공간까지 합쳐 현재 사이즈로 가게를 확장했는데, 그때가 지금껏 가장 벅찬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 가족에게 국수 가게는 모든 희망과 소원이 담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성을 들인 만큼 국수 맛도 일품이다. “이 집이 유명해지면서 공릉동 국수거리가 된 거에요.”라는 자부심 가득 담긴 한 마디를 남겼는데, 근거 없이 나온 말이 아니다. ‘멸치 국수’ 하면 생각나는 맛을 충실히 재현한 곳.


식신의 TIP

•주소: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571-16

•메뉴: 멸치국수 3,500원 / 비빔국수, 칼국수 4,000원 / 수제비 4,500원 / 김밥 2,000원

•영업시간: 09:00 ~ 05:00

•자판기 커피: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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