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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상암기사식당,식신 기사식당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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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춘곤증 날려주는 오리 불백, 상암기사식당>



바람이 분다. 차갑지도, 덥고 습하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봄바람이 분다. 엄마품처럼 포근한 햇볕을 쬐면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면 그야말로 잠이 솔솔 온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가 번쩍! 하고 떴다가 다시 천천히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학생 때는 선생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졸기도 하고(교탁에서는 다 보인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청춘일 때는 아예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누워 무거운 전공서적을 베개 삼아 시원하게(?) 잠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춘곤증이라는 놈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긴급한 문서를 다루거나, 중요한 거래처와 미팅을 하는 도중 ‘멍한 동태눈’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스커피를 들이키면서 뇌를 강제로 깨운다.


직장인의 사정이 이런데 하물며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택시기사에게 춘곤증은 봄의 불청객이나 다름없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본인뿐만 아니라 손님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니 말이다. 이 때문인지 기사식당 앞에는 식사 후 자판기 커피 한 잔씩을 뽑아들고 쉬는 기사님들의 모습이 더 자주 보이기도 한다. 차만 타면 자동으로 졸음이 쏟아지는 나는 택시기사님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곤 한다.


봄이면 호르몬 변화로 인해서 춘곤증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에 좋은 음식은 비타민 B1, C를 비롯한 무기질 등의 영양소와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오늘 소개할 기사식당은 ‘오리’를 재료로 불고기를 만들어 파는데, 오리는 닭고기에 비해 단백질뿐만 아니라 비타민 B군과 비타민 C의 함량이 높다. 또 동의보감에서는 오장 육부를 편하게 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해 봄철 춘곤증을 이겨내기에는 제격이기도 하다.


망원동에 위치한 상암기사식당은 망원동 기사식당 골목에서 6년째 성업 중인 곳이다. 이곳 인근에는 유명한 순댓국집인 상암순댓국과 소머리국밥집도 있는데 모두 다 같은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15년 전 상암순댓국을 처음 오픈하여 기사식당을 운영하다가 점차 매장이 늘어났다. 가게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니 운동복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문 앞에서 점원인 양 웃으며 “사진을 찍으러 왔냐”며 말을 건넨다. 느긋한 말투가 척 봐도 10년 이상은 된 단골손님인듯했다.






ㅣ상암기사식당의 외관




ㅣ좌식 또는 테이블 석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산한 모습




ㅣ깔끔한 주방




ㅣ메뉴판





상암기사식당의 맞은편에는 돼지불백으로 유명한 만복기사식당의 간판도 보이는데, 두 집이 ‘장군, 멍군’하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 모두 기사식당으로 유명한데 날이 좋은 날에는 한강에 라이딩 온 자전거 동호회 손님들이 점령하다시피 한다고.


골목길 구경을 마치고 들어서 오리불백을 주문하고 앉아있으니 금세 반찬이 뚝딱 차려진다. 독특하게 불판인 무쇠판에 은박 호일을 깔고 종이 호일을 한번 더 깔아 준비한다. 은박지 위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을 경우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종이 호일을 사용하는 듯 했다. 하지만 불에 오랜시간 가열해 먹다보면 어쨌거나 종이 호일도 타기 때문에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3인분부터는 스테인리스 철판에 나온다고 하는데 1, 2인분을 조리하는 부분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판에 대한 작은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고, 메뉴를 살펴보면 밑반찬은 대부분 깔끔하고 신선했고, 오리불백은 제법 집어먹을 건더기가 있었다. 붉은색의 양념이 잘 밴 오리고기가 불판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갈 때의 설렘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독특하게 순대가 반찬으로 나오는데, 순댓국집을 함께 운영하는 덕에 반찬으로 몇 점 끼워준다고. 순대는 건물 지하 1층에서 직접 만들어낸다고 한다. 동행인은 순대와 함께 나오는 막장(쌈장)을 보고 오! 하며 짤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는데, 그걸 보고 ‘경상도에서 왔구나.’ 했더니 맞단다. 이럴 때면 같은 음식이라도 지역마다 먹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느낀다.






ㅣ한 상차림 (1인분 7천 원이며, 사진은 2인분)




ㅣ화려한 비주얼




ㅣ깔끔한 반찬




ㅣ소금이나 쌈장이냐




ㅣ먹음직스럽게 익었다.




ㅣ고기가 다 익으면, 콩나물 반찬도 투척





돼지불백, 돈가스 일색의 기사식당을 제외하고 ‘오리’를 재료로 선택한 것이 궁금해 여쭤보니 “오리는 탕이든 주물럭이든 대부분 한 마리씩 팔아요. 그런데 기사님들은 대부분 혼자서 식당을 방문하시니 오리고기를 먹기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오리고기를 1인분씩 덜어 판매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1인분을 주문하면 350g을 낸다고 한다. 주물럭에 야채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도 제법 넉넉한 양이다. 오리고기를 사용하는 양이 많은 만큼 전남 보성의 오리농장과 따로 계약을 맺어 가져온다고 한다. 사장님은 ‘녹차 먹인 오리’라며 오리의 품질에 대해 자신하시기도 했는데, 생오리를 이 정도 가격에 먹을 수 있으니 만족할만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오리는 금세 익는다. 무쇠 철판의 강력한 힘이 한몫한다. (반찬 접시들을 보니 군데군데 시커멓게 타 갈라진 것들이 보이는데, 철판 옆에서 고생 꽤 나 한 모양새다) 이때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과 순대를 넣고 잘 섞어주면서 볶는다. 자 이제 맛을 보자!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양념이 잘 배어 있다. ‘이거다!’하고 눈이 번쩍 뜨일만한 맛은 아니지만 ‘주물럭’하면 모두가 머릿속으로 떠올릴만한 정말 베이직한 맛이다. 밑반찬으로 내주는 순대를 더 청해 껍데기가 약간 바삭해질 정도로 익힌 후에 건져먹으면 좋다. 배부르게 먹고 난 후엔 한강 변을 산책하면서 소화를 시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ㅣ잘 익은 오리불백




ㅣ한 쌈~




ㅣ밥 한술과도 함께




ㅣ구석의 기름엔 마늘 투척!




ㅣ남은 밥을 척! 올리니 아주머니가 김을 착! 올려주신다.




ㅣ볶음밥까지 클리어




ㅣ기사님들에게만 제공되는 물





기사식당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택시기사님들을 위한 작은 배려를 하나씩은 꼭 행하고 있다. 잔돈으로 쓸 동전을 바꿔주거나, 워셔액을 판매하거나, 카드 영수증 종이를 파는 등이다. 이곳은 운전을 할 동안 마실 수 있는 생수를 건네준다. (기사님들에게만) 더운 여름엔 냉동실 구석에서 꽁꽁 얼려두었다가 내준다. 그러면 기사님들을 그 얼음 물을 가지고 목도 축이고 열 오른 볼과 이마를 식히기도 하며 요긴하게 쓸 것이다. 물 한 병에 담긴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찰나다.


식신의 TIP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18-25

•메뉴: 오리불백 7,000원, 돼지불백 6,000원, 선지해장국 5,000원

•영업시간: 24시간(2,4째 일요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휴무)

•밥 추가: 무료

•자판기 커피: 무료

•주차공간: 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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