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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신 기사식당 로드
제 8화 장독대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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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 로드

제 8




머리맡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는 새벽.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나 출근을 준비한다. 초침이 2계단씩 뛰는 듯 한 아침 시간이지만, 가족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익숙한 순서대로 착착 준비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거울 한 번 보고 집을 나선다. 그리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고통 받다가 목적지의 문이 열리면 벨트를 막 풀어헤친 나의 뱃살처럼 쏟아져 나간다.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회사에 잘 도착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옆 직원에게 묻는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인생은 끊임없는 갈등과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직장인이 가장 고뇌에 빠지는 시간은 바로 점심시간임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조직의 막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오래 전 막내 시절, 점심시간 메뉴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스트레스였다. “막내야, 오늘 점심은 뭘 먹는 게 좋을까?”하고 질문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상사의 기분을 캐치하고 그날의 날씨, 그리고 최근 먹었던 식당을 조합해 상사가 가고 싶은 식당을 맞추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씩 운이 좋은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은 ‘눈치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자주 먹었던 점심 식사 메뉴를 순서대로 기억해보면 순댓국, 돈가스, 해장국, 콩나물국밥, 설렁탕, 돼지불백의 순이었다. (순댓국은 정말 물릴 정도로 많이 갔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김치찌개 집을 갔다. 회사 근처에 순댓국 집은 3~4 군데 있었지만 김치찌개 집은 하나 밖에 없었다. 나는 김치찌개에 물을 한강처럼 넣고 끓이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그 식당의 김치찌개가 매우 맛있었지만, 상사들은 나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나 보다.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 어떠세요?”하면 “김치찌개? 매일 먹는 거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김치찌개는, 그 익숙함 탓에 점심 메뉴 대전에서 완벽하게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기사식당 로드를 준비하면서 수 많은 기사식당의 메뉴를 조사했다. 역시 돼지불백, 한식뷔페, 돈가스 순이었다. 그러다 이곳을 발견했다. 김치찌개 전문점인 ‘장독대 김치찌개’다.


장독대 김치찌개는 영동대교 남단 교차로에 위치해있다. 2003년 오픈해 올해 12년째 한자리에서 김치찌개를 판매하고 있다. 청담점의 성공을 시작으로 여의도나 역삼 등에 분점도 생겼다. 하지만 ‘기사식당’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곳 청담본점이 유일하다.





ㅣ장독대 김치찌개의 외관




ㅣ실내. 연예인의 싸인이 빼곡하다.




ㅣ분주한 주방




ㅣ이른 아침이었지만, 곧 몰아닥칠 점심 손님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ㅣ가게 한 편에 딸린 작은 방




ㅣ기사식당답게 주차장도 완비.





출근 전 김치찌개로 든든히 하루를 시작하고자 아침 일찍 방문했더니 한산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은 이런 점이 가장 좋다. 매장의 운영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아무 때나 방문해도 좋으니 말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24시간 운영의 덕택도 있는데, 시간을 가리지 않고 들르는 택시기사님뿐만 아니라 루이나, 앤써 등 유명한 클럽이 가까운 곳에 있어 신나게 놀다 늦은 끼니를 해결하러 오는 인구가 적지 않다. 또 JYP를 포함한 연예 기획사도 몰려있어 새벽 즈음엔 연예인 들이 종종 출몰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새벽집도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기사식당에서 연예인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벽마다 연예인의 싸인이 빼곡하다. 싸인지의 색이 다소 바랬는데, 여쭤보니 더 이상 홍보 활동은 하고 있지 않으며 이미 붙인 건 그냥 둔다는 무심한 대답이 들어왔다.


고개를 끄덕일 즈음 빠른 스피드로 음식들이 차려진다. 기사식당 다운 스피드인 건 좋은데, 끓이기 전의 멀건 김치찌개는 다소 식욕이 떨어지는 효과를 주었다... 재빨리 라면 사리를 투하하고 바글바글 끓이기 시작한다.






ㅣ김치찌개 나왔습니다! (1인분 7천 원이고 사진은 3인분)




ㅣ이 멀건 육수가 맛있는 김치찌개로 바뀔 것인가..(의문)




ㅣ구원 투수 라면사리 투척




ㅣ무난했던 밑반찬. 어묵의 역할이 있다.




ㅣ한 소금 푹 끓이고 난 후의 국물 샷.. 후루룩!





이곳의 김치찌개는 조금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김치찌개를 잘한다고 입소문이 난 곳은 김치를 기름에 볶다가 물이나 육수를 부어서 특유의 기름지고 꽉 찬 국물 맛을 내는데, 장독대 김치찌개는 끓이기 전 육수의 상태가 기름 한 방울 없이 멀겋고 깔끔했다. 김치는 적당히 물기만 짜 낸 듯 썰렁(?)하다. 처음 보면 ‘이걸 얼마나 끓여야 맛이 나려나’하고 잠깐 의문이 들 정도.


그런데 안을 뒤져보니 비계의 비율이 높아 보이는 고기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 센 불로 팔팔 끓이니 기름이 우러나오기 시작한다. 국물이 어느 정도 먹을 만 해졌다 싶을 때 라면사리를 넣으면 약간 졸아들면서 먹기 좋은 농도로 변한다.


이때 장독대 김치찌개의 팁이 있다. 바로 어묵 반찬을 활용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기본양념만 해서 무쳐 내온 어묵은 그냥 집어먹어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보통 찌개에 넣어 먹는다. 어묵을 넣고 바글바글 끓이면 약간 부대찌개 같은 감칠맛이 서서히 나기 시작한다. 처음의 허여멀건 했던 상태의 육수가 떠오르며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것(죽어가는 찌개를 살렸다는..)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식당에서 하라고 한 대로 한 것뿐인데...


이렇게 완성한 찌개를 한 입 맛보니 일반 김치찌개보단 조금 가벼운 느낌이다. 그러나 덕분에 속이 느끼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고기는 ‘돼지고기 김치찌개’하면 떠올릴 정도의 양보다 다소 적게 들어있는 양이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부가 넉넉히 들어있어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국내산 고기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산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때문인지 고기에서 약간의 돼지 냄새가 난다. 심하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고 근처에 있었다면 종종 방문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






ㅣ어묵 반찬 투하!




ㅣ어묵 반찬을 다 넣고 나서..




ㅣ퐈이야!




ㅣ국물이 잘 우러난 찌개




ㅣ푹푹 떠다 먹으면 된다.





기사식당은 큰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저렴한 가격, 빠른 서빙 스피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강남에서 기사식당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장독대 김치찌개는 택시 기사님이 머물다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하나다. 또 순댓국이나 해장국 같은 안정적인 장사 아이템이 아닌 점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작은 식당이지만 지긋한 나이의 택시기사님부터, 호텔을 찾았다가 아침식사를 하러 온 듯한 노란 머리의 외국인, 해장을 하러 온 손님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오고 간다. 김치와 돼지고기와 어묵과 라면이 섞인 이 집의 김치찌개처럼 말이다.


식신의 TIP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52-6

•메뉴: 김치찌개 7천원

•영업시간: 24시간

•밥 추가: 무료

•자판기 커피: 100원

•주차공간: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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