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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현대기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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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밥들은 먹었어? 정겨운 할매의 현대기사식당>



2015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에 들어섰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낮에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으면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매년 봄이 되면 나는 으레 강원도를 찾곤 한다. 새파란 빛깔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전경으로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속초, 보고 또 봐도 웅장함에 압도되어 버리는 울산바위, 새하얀 털을 가진 동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꾀죄죄했던 양들이 인상 깊었던 양떼목장까지. 강원도에는 이색적인 볼거리가 가득하다. 또, 강원도를 봄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 한 가지는, 겨울을 잘 이겨내고 갓 출하된 황태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황태덕장들은 매해 12월이면 통나무를 이어 덕장을 만들고 1월부터 본격적으로 황태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명태의 입에 끈을 매달아 일일이 걸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의 차례다. 영하 10도 이하의 공기와 따뜻한 햇볕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뚱어리로 대관령의 바람과 눈을 맞아내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듬해 3월 말 즈음에서 4월 초가 될 때가지 겨울을 이겨낸 명태들은 비로소 금빛 속살의 황태가 된다.


직장인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는 이 황태를 다루는 식당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황태는 피로한 간을 보호해주는 메타오닌을 비롯한 아미노산이 풍부해 해장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황태 육수 특유의 시원한 맛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데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역삼동의 이 기사식당은 20년 넘게 인근 택시기사님과 직장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삼역 뒤편의 파이낸스센터 건물이 스타타워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때부터 22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곳. 인근의 역삼동북어집과 함께 이 근방에서는 현대기사식당을 모르는 이가 없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사장님이 자신의 인생과 함께 한 가게를 돌보고 있었다. 식사를 하려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는데 택시기사와 함께 일반 손님들도 종종 보였다. 점심과 저녁시간에는 인근 직장인들이 자리를 꽉 채운다고.


“일반 식당은 회사원만 상대하니 점심 저녁 시간 말고는 장사를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24시간 내내 장사를 할 수 있는 기사식당을 열었지. 술을 팔지 않아 깔끔하게 장사할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처음엔 북어찜하고 청국장 말고도 육개장, 설렁탕, 닭곰탕까지 팔았는데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로 줄여나갔지.”






ㅣ1층은 주차장, 2층이 식당이다.




ㅣ약 14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




ㅣ바로 맞은편에 있는 별관




ㅣ정겨운 팻말




ㅣ낡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ㅣ오래 된 풍경의 식당. TV를 보며 식사 중이신 기사님들의 모습.





이곳의 북어찜의 특징은 북어찜인지 북엇국인지 알 수 없는 국물의 양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북어찜 국물이 이토록 흥건하지는 않았다. 북어 아래에 고여있는 매콤한 국물이 맛있어 손님들이 계속해서 국물을 더 달라고 청하는 바람에 조금씩 더 넣다 보니 지금의 이 상태가 되었다고.


황태의 사이즈는 혼자 먹기 좋을 정도로 몸집이 작달막하다. 대관령에 있는 한 황태덕장에서 22년째 황태를 공수하고 있다고 한다. 황태를 많이 떼서 기사식당과 겸해 을지로 4가의 중부시장에서 황태를 판매하고 있다고. 제대로 잘 말린 황태는 보드랍고 연해서 뼈째 먹어도 괜찮았다.


이곳 북어찜의 특징인 육수는 황태를 깨끗한 물에 한번 씻어서 대가리와 몸통을 분리한 후 대가리와 무를 큰 통에서 끓여내 만드는데, 황태 대가리가 물 위로 뜨지 않아야 그 맛이 온전히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황태와 무 한 조각을 그릇에 담고 양념을 한 육수를 끼얹어 완성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큰 들통에 황태 대가리를 가득 넣고 육수를 내는 것이 방법이라 하니 집에서 이 맛을 내기란 어려울 것 같다....


눈으로 봤을 땐 도통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는데, 한 수저 떠먹어보니 생각보다 슴슴한 간이다. 몇 수저를 입에 넣으니 크게 맵지 않으면서 북어와 무 육수 특유의 시원한 맛이 느껴진다. 별다른 반찬이 없다 보니 북어찜 국물을 계속해서 떠먹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금세 바닥이 났다. 주변 테이블에서 ‘이모 여기 국물 좀 더 주세요’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이해가 갔다.


살이 연해서 수저로 뚝뚝 끊어 밥과 함께 먹는다. 작은 사이즈의 황태지만 혼자서 먹기에 충분하다.






ㅣ기사식당답게 1인 1상에 차려 나오는 북어찜 백반




ㅣ국물이 흥건한 독특한 북어찜




ㅣ국물 속에 북어 한 마리가 포옥 담겨 있다.




ㅣ연한 살이 자꾸 집어먹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




ㅣ해장에 딱인 시원한 국물




ㅣ밥에 올려 냠냠




ㅣ무도 적당히 익어 무르다.





처음에 이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생각보다 진한 청국장의 쿰쿰한 냄새에 잠시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코의 신경이 둔감해지면서 조금 전의 기억을 잊게 만든다. 새삼 인체의 신비로움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 그리곤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기억을 더듬고 있노라면 금세 식사가 나온다. 북어찜과 마찬가지로 네모난 쟁반에 청국장과 밥, 빈 접시가 달려나온다.


북어 머리와 파뿌리, 양파 뿌리 등으로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육수를 내고 청국장을 넣어 만든다. 참고로 이곳에서 황태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식재료는 음성의 거래처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제 방문해도 한결같은 맛이 난다고.


수저를 들고 휘휘 저어보니 큰 멸치와 두부, 양파, 무 등이 보인다. 내 입에는 살짝 간이 셌지만 밥에 몇 수저 떠 넣고 비벼 먹으니 딱 알맞았다. 함께 곁들일만한 반찬이 적은 점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5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니 대체로 만족할만하다.


김치와 무생채 반찬 이외에도, 테이블마다 풋고추가 있는데 청국장에 잘 비빈 밥을 먹다가 풋고추를 한입 맛보니 제법 잘 어울린다. (풋고추를 찍어 먹는 쌈장이 테이블 한 쪽에 있는데, 쌈장통에 직접 고추를 댄 흔적이 보였다. 인식 개선이 절실해 보인다)






ㅣ멸치청국장 백반




ㅣ청국장과 멸치를 넣고 잘 끓여냈다.




ㅣ청국장이 제법 들어있다.




ㅣ밥위에 얹어서




ㅣ슥슥 비벼먹어보자.




ㅣ밥도둑이 따로 없다.




ㅣ테이블 한편에 자리한 반찬 3총사




ㅣ싱싱한 풋고추가 무제한





식당을 운영하는 동안 딱히 힘든 일은 없었다는 주인 할머니. 끊임없이 손님들이 무엇을 잘 먹는지, 좋아하는지 살펴 음식을 고쳐나간지 어언 22년. 지금은 그저 손님들이 ‘잘 먹었습니다’하면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 되었다고. 그 한결같은 마음이 이곳을 지금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이 아닐까.





* 다음 기사식당 로드를 찾아서는 서울을 벗어나 인천으로 향합니다. 구독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식신의 TIP


•주소: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8-11

•메뉴: 북어찜 6,000원, 멸치청국장 5,000원

•영업시간: 오전 7시 ~ 밤 10시 (연중무휴)

•밥추가: 무료

•자판기커피: 무료

•주차공간: 본관 약 15대, 별관 약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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